소서와 대서 한 중간에서
소서와 대서 한 중간에서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07.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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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7월의 한중간에 와있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너무 진부할 만큼 정말 시간이 빠르다. 7월의 한중간이기도 한 지금은 사실 24절기에서도 절반 즈음이다. 지난주 화요일이었던 7월 7일은 소서였다. 그리고 다음 주 7월 22일은 대서다. 소서 절기가 24절기 중 11번째 절기고 대서의 절기는 12번째 절기이니 이번 주 우리는 작은 더위에서 큰 더위로 나가는 한가운데 놓인 셈이다.

여름 장마와 철이 겹치는 소서 무렵 농가에서는 모가 뿌리내린 후 크는 것을 돕기 위해 피사리를 했다. 또 논둑이나 밭두렁에 풀을 베어 거름을 만들고 가을에 심은 보리를 벤 자리에 콩, 팥, 조 등 잡곡을 심었다. 지금이야 마트에서 일 년 내내 푸성귀가 흔하지만, 옛날에는 이 무렵에 이르러야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져서, 제철채소인 오이, 애호박, 감자 등과 제철과일인 자두, 수박, 참외 등을 함께 챙겨 먹으면서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주로 중복 절기에 겹치는 대서는 올해는 초복과 중복 사이에 들었다. 중복과 겹친다는 데서 이미 힌트가 되었겠지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온다. 간혹 장마전선이 물러나지 않으면 큰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대게는 불볕더위, 찜통더위를 이때 겪는다.

언젠가 법정스님의 하안거 해제 법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물었다. “매우 춥거나 너무 더우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 곳이다. 추울 때는 너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너 자신이 더위가 돼라.”

법정스님은 이 이야기에 덧붙여 이리 말씀하셨다.

“일이 없는 사람이 더위를 더 탑니다. (수해를 입어) 지금 뙤약볕 아래서 실종가족과 가재도구를 찾는 수재민들이 더위를 느끼겠습니까? 스스로 더위와 추위가 되는 것은 이 풍진 세상을 잘 살아가는 길잡이입니다. 이 더위가 극성이지만 다 한때입니다. 그 한때에 꺾여선 안 됩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 말 못할 사정이 있지만 거기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곧 가을바람이 불면 더위가 자취를 감추듯 상황을 받아들이면 극복할 의지와 용기가 생깁니다.”

세상은 언제나 뜨겁고 차갑다. 편을 갈라 설왕설래, 끝나지 않을 논쟁거리를 두고 다투는 모양새는 언제나 반복이다. 그러나 언제 그런 논쟁이 있었냐는 듯 초미의 관심을 끌던 주제와 인물은 오간 데 없이 자취를 감춘다. 다른 주제, 다른 인물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모두 그 도마에 모여 타인에 대한 칼질에 여념이 없다.

스스로가 더위가 되고 추위가 된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은 오직 하나다. 자기 공부. 자신의 공부에 몰두한 사람에게는 스스로가 곧 더위고 곧 추위가 된다. 그렇기에 그는 더위, 추위 등 환경에, 타인에 휩쓸리지 않는다. 중심을 잡고선 그는 더위 속에서, 추위 속에서 자기를 만나고, 사바의 삶을 열반 삶으로 바꾼다. 이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 뜨겁고 찬 세상, 난도질과 싸움질이 난무하는 이곳 말고 천국이 어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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