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 목소리를 녹음했는데 왜 다르게 들리지?
분명 내 목소리를 녹음했는데 왜 다르게 들리지?
  •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 승인 2020.07.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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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에 들어온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억지로 적응하느라 어색하고 서툴렀던 것들이 어느새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교육계 역사상 처음으로 학생들의 온라인개학이 이루어지면서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식이 쏟아져 나왔다.

필자가 근무하는 특수교육원도 체험을 오지 못하는 특수교육대상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브레인스토밍을 거쳤다. 이제는 익숙하게 자리 잡았지만, 사실 각종 온라인 지원 방식이 초창기에는 교사들의 두통을 자아내는 애물단지였다. 억지로(?) 모든 교사의 정보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간과했던 질문들이 화두로 떠올랐다.

“분명 내 목소리를 녹음했는데 왜 다르게 들리지?”

“녹음된 그 목소리, 정말 네 목소리 맞아. 안 이상한데?”

일반적인 모든 소리는 귀에 전달된 공기의 진동을 통해 뇌에 전달된다. 그런데 나 자신이 말하는 내 목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만이 아니라 한 가지 경로가 더 있다. 바로 두개골 뼈를 진동시키면서 목소리가 뇌로 전달되는 경로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낼 때 본인 스스로 듣는 소리는 귀를 통해 전달된 소리와 두개골 뼈를 통해 전달된 소리를 합한 것이다. 반면에 녹음한 소리는 다른 일반적인 소리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귀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즉 내가 듣고 있는 내 목소리는 나한테만 익숙한 것이고, 오히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 목소리이다.

“아, 왜 이렇게 두 가지 경로가 있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녹음한 내 목소리는 정말 이상한데 말이야.” 그런데 불평하지 말자. 사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감사하게도 듣는 경로가 두 가지인 덕분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작곡된 곡이다. 아무리 30년 동안 음악을 듣고 연주를 했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 이상의 길이로 되어 있는 이 교향곡을 어떻게 청각장애가 있는데도 작곡할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 연필의 한쪽 끝을 이로 물고, 반대쪽 끝을 피아노 사운드 보드에 닿게 하여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두개골 뼈의 진동을 통한 소리 듣기이다. 말년에 청각 장애가 더 심해졌을 때는, 피아노의 다리를 톱으로 자르고 마루를 사운드 보드로 사용하여 귀를 마루에 가져다 대고 피아노 음을 두드렸다. 심지어는 피아노를 너무 세게 두드려서 피아노를 고장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9번 교향곡 `합창'을 처음 대중 앞에서 연주할 때 베토벤은 감독으로서 참여하였다. 감명받은 대중이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이를 듣지 못한 베토벤을 대중들 쪽으로 돌려세웠을 때에야 비로소 연주가 성공했음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4악장 중 환희의 송가 몇 구절을 보낸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초의 환희를 가슴에 담고 모든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장미 핀 환희의 오솔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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