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부인
어머부인
  • 전현주 수필가
  • 승인 2020.07.14 1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전현주 수필가
전현주 수필가

 

“애마부인?” 내가 닉네임을 말하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말이다. `어머부인'이라는 별명은 20여 년 전 귀농했을 때 마을 이장님이 지어주었다. 막 시골 생활을 시작한 내가 “어머! 예뻐라.” “어머! 신기해라.”를 연발하자 그 모습이 퍽 우스워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마당에 돋아나는 민들레, 냉이를 보고도 환호성을 질렀으니 평생 농사를 지어 온 분들에게 철없는 내 모습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후 내 ID는 어머부인으로 바뀌었다.

시골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비록 초라한 시작이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서울에서 2시간 남짓한 거리인데도 마치 먼 나라처럼 낯설었다. 남편이 서툰 솜씨로 짓기 시작한 집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우리 가족은 마을 회관을 빌려 잠을 잤다.

아침이면 다시 마을 꼭대기에 있는 집터로 올라가 마당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해 먹으면서도 캠핑을 하듯 신이 났다. 그새 마당에는 망초꽃이 허리만큼 빼곡하게 자라 화사한 꽃밭을 이루었다. 우리는 예뻐서 꺾지도 뽑지도 못하는 꽃을 보고 마을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찼다.

집이 거의 완성 될 무렵에 옆 마을의 산비탈 밭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읍내 도서관에서 빌려 온 농법 책을 통해 배운 대로 모종을 길러 내다심은 배추는 거짓말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모든 것이 너무도 쉬워서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도시에서 도망쳐 왔다. 힘겨운 상황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들이 이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운 시간과 자리를 바꿔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은 환희 그 자체였다. 여름날이면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쏟아지고, 비가 그치면 종종 무지개가 떴다. 밤이 되면 책에 있는 별자리가 하늘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까지가 내 어머부인 시절의 이야기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너무도 금방 끝나버렸다. 배추 농사는 잘되었지만 한 통에 500원으로 가격이 매겨졌다. 배추밭을 갈아엎을 상황이 되자 우리는 한 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세 아이를 트럭에 태우고 배추를 팔러 다녀야 했다. 이후 감자도 옥수수도 고구마도 모두 풍작이었지만 우리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농사일에 지치고 틈틈이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변해 있었다.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장터를 누비고 옥수수를 팔러 다녔다. 참깨를 솎느라 손톱 밑이 새까매져도 그 손을 내밀면서 부끄럽지 않았다.

내 인생은 어머부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농사를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한 후에도 힘든 고비는 여러 번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며 이겨낼 수 있었다. 어머부인이 되어 참자유와 기쁨을 맛본 나는 도시에서 미래를 불안해하며 숨죽여 살던 나와는 달랐다. 서울을 떠나올 때 하나씩 멀어져가는 한강 다리를 돌아다보며 눈물을 흘리던 내가 아니었다.

어머부인이 나에게 힘을 준다. 그녀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이겨낸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지지하고 있다. 나는 어머부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