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이익공유제'라도 서두르자
`협력이익공유제'라도 서두르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7.12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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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 2018년 전국 74만215개 기업이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했다. 이들 업체들이 전년도인 2017년 1년동안 벌었다고 신고한 총 소득금액은 384조670억원이었다. 그런데 상위 0.1%인 740개 업체가 신고한 금액이 200조345억원에 달했다. 전체 기업이 올린 소득액의 52.1%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입의 50% 이상을 상위 0.1%가 차지한 것이다. 1000명이 일하는 시장에서 1명이 나머지 999명이 번 돈을 합친 것 보다 더 벌었다는 얘기다. 0.1%에는 대기업과 고수익 플랫폼을 운영하는 IT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범위를 조금 넓혀 상위 1%인 7400개 업체의 소득을 봐도 독식현상은 여전하다. 전체 소득액의 71.2%를 가져간다. 1%가 휩쓸고 간 시장에는 30%도 안되는 과실만이 남겨지고, 이를 놓고 나머지 99%가 피를 튀기며 격돌한다. 0.1%는 생사기로에 몰린 99%와 달리 코로나 사태에도 굳건하다. 30대 재벌기업이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곳간에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은 957조원에 달한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가 초래한 국난 극복을 위한 이른바 `한국판 뉴딜 정책'에 쏟아붓겠다는 예산이 100조원이다. 대기업의 지갑 두께를 가늠할 수 있다. 이 돈을 풀어 배곯는 협력업체와 상생하고, 나라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오래 전부터 제기됐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기업간 소득격차는 종사자들의 임금격차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18년 기준 대기업 월평균 임금은 501만원, 중소기업은 231만원이다. 일본은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지만 최저임금 맞추기도 벅찬 중소기업들은 따를 여력이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놓고 인천공항공사에서 벌어진 `을'들끼리의 갈등 조차도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다.

기업 소득격차는 사회 곳곳의 양극화 현상을 주도하는 근원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문제보다 심각하다. 경제과실의 독식은 기회의 독식으로 이어지고 세습과 신분제의 단계로 치닫는다. 이미 0.1%의 질주가 경제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의심할 만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불법승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의 결정이 그렇다.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의 기소는 물론 수사도 중단해야 한다고 검찰에 권고했다. 심의위는 법원도 일정 부분 인정한 혐의를 전면 부정하고 수사까지 가로 막았다. 심의위는 학계·법조계·사회단체 등에서 추천한 시민 14명으로 구성됐다. 0.1%가 둘러친 울타리가 보다 확장되고 견고해졌다고 하면 과도한 해석일까.

여당이`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협력이익공유제의 골자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사전 약정을 하고 공정하게 이윤을 나누는 것이다. 단가 계약과 이윤 분배에서 푸대접을 받아온 중소 협력업체들이 기여한 대가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지난 국회에서도 추진됐지만 야당 반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을'의 입장인 협력업체가 미운털이 박혀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하지만, 그런 기우에 시간을 허비할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이번 만큼은 법제화가 성사돼 기형적인 0.1% 독식경제를 개선하는 첫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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