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그랬는지 … 원망스럽습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 … 원망스럽습니다”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07.09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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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살인사건으로 妻 잃은 50대 가장의 울분
청주 복대동 자택서 피살 … 단란한 가정 풍비박산
술에 의지 … 20년 폐인 생활 속 아내 묘지 보살펴
백일 아들 비운의 엄마 모른채 고모 아들로 자라
화성연쇄살인시기 발생 … 이춘재 범행 입증 안돼
연쇄살인범 이춘재가 1994년 1월13일 청주시 복대동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그해 5우러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 내용을 실은 지역일간지 기사.
연쇄살인범 이춘재가 1994년 1월13일 청주시 복대동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그해 5우러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 내용을 실은 지역일간지 기사.

 

“도대체 누가, 왜 그랬는지라도 알면 덜 억울할 것 같습니다.”

흰머리가 성성한 58살 임모씨는 최근 드러난 이춘재의 범행을 보면서 28년 전 비명에 숨져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분을 토했다.

임씨의 아내 이모씨(당시 28살)는 28년 전인 1992년 6월 24일 청주시 복대동 자택에서 피살됐다.

당시 숨진 이씨의 옆에는 갓 백일이 지난 아들이 울고 있었고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인근 세탁소 주인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당시 신혼인 임씨 부부는 식당기구 납품일을 하며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친구 부인 이씨는 천사 같았어요. 상냥하고 다정하고 …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게 너무 예뻐서 친구들이 모두 그 부부를 좋아했어요.”

임씨의 절친 최모씨(58·청주시 상당구 용암동)가 기억하는 28년 전 임씨 아내의 모습이다.

피살사건 당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현장에서 나갔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다.

수사를 맡은 당시 서부경찰서(현 흥덕서)는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용의자는 물론 이렇다 할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28년이 흘렀고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당시 담당형사도 퇴직했다.

아내를 잃은 임씨의 인생은 이때부터 엉망이 됐다. 술로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거듭됐다.

백일이 지난 아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울산에 사는 누나에게 아들을 맡겼다. 그 아들이 올해 28살이다. 임씨나 누나, 매형은 아들에게 엄마의 불행을 비밀에 부쳤다. 아들은 그렇게 고모와 고모부를 친엄마, 친아빠로 알고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외삼촌이었다.

폐인처럼 지내던 임씨는 친구 등 주변의 도움 속에 10여년 전 재혼을 하는 등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수 아내의 묘지를 수시로 찾았고 꼼꼼이 보살폈다. 올 초에는 아내의 유골을 수습해 목련공원에 모셨다.

차츰 일상을 찾아가던 임씨에게 지난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범행이 드러난 것이다. 그 뉴스에 당시 청주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이 거론됐다. 1992년 4월 강내면 고속도로 공사장 20대 여성 피살, 같은 달 봉명동 술집 여종업원 피살, 남주동 27살 주부피살, 그리고 아내 사건까지 모두 5건이었다. 이 중 2건이 이춘재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1994년 처제 성폭행 살인까지 포함하면 3건이었다.(사진)

임씨는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경찰서에 아내 사건의 관련 여부를 문의했다.

이춘재의 범행으로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춘재사건 수사결과에도 아내의 사건은 빠졌다.

“아들에게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합니다. 누가, 왜 우리 가정을 이리 만들었는지 원망스럽습니다.” 임씨 말에선 `처벌조차 못하는 이춘재'로 애써 참고 있던 울분이 다시 차오르는듯 했다.

28년 전 임씨 아내 피살사건은 다시 미제로 남게 됐다.

/ 오영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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