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77명의 영웅을 기억하며
7월 7일, 77명의 영웅을 기억하며
  • 박종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승인 2020.07.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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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종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박종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요즘 세대들에게 `산업화', `현대화'란 단어는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민족분단이라는 아픔을 딛고 산업화·현대화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에 조성된 많은 산업시설물과 공공재들은 국가발전의 기반을 닦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경부고속도로이다.

올해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교량으로 건설되었던 대전 육교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곳곳에서 경부고속도로의 50년을 축하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화려한 영광의 그늘 아래 가려진 희생의 몫을 기억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에 개통되었다. 무더운 한여름의 시작인 7월 7일에 고속도로를 개통하게 된 데에는 사실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첫 구간인 서울 - 수원간 고속도로 건설 기공식을 시작으로, 1970년 7월 7일 대전 - 대구간이 완공되면서 장장 2년 5개월 동안 진행된 대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이 공사에는 연간 90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투입되었으며, 총 3,148개의 장비가 도입되었고 429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또한 14개 국내 민간 용역업체가 조사, 측량과 실시설계를 담당했고, 시공에는 16개 건설업체와 3개 군공병단이 투입되었다. 공사는 4개의 구간(서울-오산, 오산-대전, 대전-대구, 대구-부산)으로 나눠 계획하였고, 이를 다시 수원공구, 천안공구, 대전공구, 황간공구, 왜관공구, 영천공구, 언양공구 등 총 7개의 공구로 나누어 공사를 추진했다.

이 중 가장 힘들었던 공사 구간이 대전-대구 구간이었고, 그 중 특히 경부고속도로 최고의 난공사로 꼽혔던 곳이 바로 우리 지역 옥천에 위치한 당재터널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의미하기도 한 이 당재터널 공사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우산리와 청성면 묘금리 사이를 연결한 곡선형 터널로 총 연장 1,120m(상행 590m, 하행 530m)에 달하는 최장 터널이었다. 그리고 이 터널공사 과정에서 9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럼 과연 경부고속도로가 7월 7일에 개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돌아가신 77명의 순직자를 기리기 위함이다. 지금도 개통일 즈음이면 금강휴게소 뒤편 언덕에 있는 `순직자 위령탑'에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제가 열린다. 올해도 6월 30일 한국도로공사 관계자와 순직자 유가족 100명이 모여 위령제를 개최했다. 가족과 동료가 추모하는 모습 뒤로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빠른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산업화의 영웅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 빨리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분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남아있는 산업유산을 국가가 지정, 관리하는 등록문화재로 등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충북지역에는 50년 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폐도로와 폐터널, 폐교량 등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또한 개통과 함께 세워진 순직자 위령탑,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1971년 개업한 우리나라 최초의 휴게소인 `추풍령 휴게소'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산업화를 상징하는 산업유산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50주년을 맞이하여 충북의 산업유산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야만 매년 7월 7일이 되면 그렇게 사라져간 77명의 위인을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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