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위로
한 사람의 위로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0.07.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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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분명 아침 하늘은 잔뜩 흐렸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 긴소매 옷에 우산도 챙겨들었다. 오늘은 승용차가 아닌 버스를 이용해 시내에 나갈 참이다. 모처럼 은행 볼일도 있고 차일피일 미루던 잡다한 일들로 시간이 제법 걸릴 터이고 주차장에 장시간 주차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자 했다.

버스에 승객은 많지 않았다.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을 지나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새 날씨가 후텁지근하니 더워졌다. 몇 정거장을 지나 버스에 올라온 젊은 여인은 민소매에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창밖에 하늘을 보니 먹구름은 어디로 가고 햇볕이 쨍쨍하지 않은가. 뒤쪽에 앉은 남학생은 운전기사께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나 역시 긴소매 옷을 입었으니 더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헛짚은 예상으로 외출이 다소 불편할듯하다.

큰 수술을 두어 번 받은 후부터 추위에 약한 체질이 되었다. 삼복더위가 아니면 늘 외출할 때는 `날씨가 추울까'를 염려 하곤 한다. 언젠가 서울 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이다. 겨울이니 당연히 추운 날씨를 생각하고 아침 일찍 옷을 두툼하게 입고 출발했다. 예상과 달리 모임장소엔 난방이 아주 잘되는 곳이었다. 서울사람들은 코트 속에 얇은 블라우스나 아예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는데, 내의에 두툼한 셔츠까지 입었으니 때아닌 더위로 낭패를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산이 나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은행에 갔을 때나 마트에서도 신경이 쓰였다. 치과에 갔을 때는 우산을 놓고 나와 다시 찾으러 가야 했다. 나처럼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양산을 쓰고 지나가는 이는 나를 흘끔거리듯이 바라보았다. 비가 오면 요긴하게 쓰려고 들고 나온 우산이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색깔 고운 우산을 들고 왔으면 양산대용으로 쓰기라도 하지 싶었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 같이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친구는 내 손에 우산을 보고 “참, 준비성 하나는 대단한데, 그렇지만 오늘은 예상이 빗나갔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비가 오겠어?”라고 핀잔을 줬다.

오래전 어머니는 비만 오면 우산을 들고 우리 마중을 오셨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어른들 걸음으로도 삼십 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농사일하시다가도 비가 내리면 모든 일을 뒤로하고 우산을 챙겨 삼촌과 내가 다니는 학교로 잰걸음으로 오시곤 하셨다. 습관이란 그런 것일까.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산을 들고 학교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남자아이들은 더러 비도 맞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그렇게 다녀야지”라며 과잉보호를 한다고도 했었다. 이미 삼십여 년 전의 일이라 그때는 지금처럼 환경오염 걱정을 덜 할 때이지만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산 때문에 불편했던 하루를 돌아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우산을 펼쳐들고 집으로 가던 추억에 젖어 버스가 오는 줄도 몰랐다. 버스를 놓칠세라 급히 올라탔다. 곧이어 헐레벌떡 뒤따라 탑승한 중년의 여인도 나처럼 우산을 들고 내 옆에 와서 앉는다. 그녀는 “오늘 우산 때문에 불편했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건넸다. 초면인 그녀도 나처럼 우산을 들고 하루를 보냈다는 이유로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지 않는가. 완전 헛짚은 하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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