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있었다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0.07.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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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갑자기 동공이 커졌다. 어느 날 영찬은 서랍을 여는 순간 제출해야 할 서류와 함께 있는 줄 여겼던 봉투들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어찌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찬에게 그 가치가 남다른 것이었기에 어찌 잃을 수 있으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봉투 속에는 고이 간직하며 보관해온 잊지 못할 추억들이 지나온 시간 속에 함께한 그들과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영찬은 점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갔다. 그 순간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오로지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집안을 온통 뒤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행방이 묘연했다. 그나마 다행히 제출해야 할 서류들은 아직 준비할 시간이 조금 있었지만, 추억이 담긴 봉투는 영영 볼 수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더욱 조바심쳤다. 영찬은 곰곰이 세심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어쩌다 봉투들이 사라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찬은 그동안 그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되어 간직해온 줄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찬은 스스로 부주의한 탓으로 사라진 건 아닌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찾다 찾다 지친 영찬은 소중한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스스로 속을 태우며 화가 났다.

또한 어떤 친구는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잘 두어 보관하고 있기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깊숙한 곳에 두지 않고 늘 보거나 손닿는 곳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였다. 그때부터 영찬에게 하루하루의 시간은 잃어버린 기억 주변을 맴돌다가 돌아서면 나타나 사라진 기억 저편 어디선가 또다시 되풀이되면서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던 집념의 기억은 점점 시간이 망각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갈수록 점점 희미한 시간 속으로 물 흐르듯 미궁의 기억들은 멀어져 가고 그렇게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던 시간은 무디어져 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까맣게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보관함의 서류들을 정리하려고 들춰내던 순간 깊숙한 곳에서 애타고 목마르게 찾던 봉투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기억 속에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아무리 가까운 방안 서랍에 있으면 무엇할까 내 안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많고 다양한 상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기억의 상실로 인하여 잃은 것을 보았을 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어찌 보면 다른 상실과는 달리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잃은 것도 찾은 것도 모두가 내 안에 있었다. 기억 속에 잠시 떠나 있었던 일이 되돌아왔을 때 잊고 있었던 것을 잃었다고 했다. 기억은 고이 간직하고도 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렇듯 삶은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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