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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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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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인가 '문' 인가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한글 단어를 뒤집어 보면서 즐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곰'이나 '운'은 글을 깨우치고 난 뒤 누렸던 어릴적 즐거움에 대표적으로 사용됐던 단어로, 바로 '문'이 되거나 '공'이 되는 이치다.

그런데 유치하기 짝이 없던 이런 어릴적 글자놀이 속에 상당히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다.

먼저 '운'이라는 글자를 뒤집었을 때 '공'이 되는 사정의 속뜻엔 공들여 매진하지 않으면 결코 쉽사리 운을 얻을 수 없다는 식으로 풀이될 수 있다. 소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낱말 '운'을 한자의 음훈을 빌어 뜻을 풀이할 경우 '구름 운(雲)'이 되니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모습의 무상함과 하늘의 무한함에서 '빌 공(空)'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곰'이라는 글자를 뒤집어 '문'을 만들어 놓고, 이를 요즘 세상풍경과 대입시키면 그 이치가 더욱 절묘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동해선 운행이 중단됐고, 그 이듬해 6월 경의선 역시 운행이 중단된 이후 실로 반백 년 만에 열린 남과 북의 '문'은 '곰'처럼 우직한 행보의 결실이 아닌가.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남북사이의 문은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2년 9월 경의·동해선 철·도로 연결공사 착공식을 거치면서 금방이라도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남측 구간 연결공사가 완료되고, 2004년 기본 협의서가 체결됐음에도 2006년 5월에는 북측의 일방적인 시험운행 취소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곰'과 같은 우직한 행보는 마침내 그 견고한 '문'을 열어젖히는 성과를 만들었다.

'곰'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징성이 있는 동물인가.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이 포용이라는 발상의 뒤집음과 끈질긴 인내는 남북연결과 대륙철도의 건설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글자 혹은 동물에게 부여되는 상징성은 이처럼 생각의 뒤집음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흥행성적 수위를 다투는 영화 '스파이더맨 3'를 보라.

생긴 모습 자체만으로는 어딘가 음침하고, 또 포식자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거미가 그 모티브가 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아래 커다란 경제적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의인화되고 있지 않은가.

동물계의 대표적 '같기도'의 주역인 박쥐를 캐릭터화한 영화 '배트맨'은 1989년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이후 '배트맨2', '배트맨 포에버'를 거쳐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에 이르기까지 세기를 바꾸면서 무려 5편의 영화로 전 세계 어린이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세계 문화산업 시장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의 이런 발상의 전환은 일찌감치 쥐를 의인화한 미키마우스에서 그 엄청난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쑥과 마늘을 먹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인간이 된 곰, 그리하여 우리 건국설화의 당당한 주인공이 된 곰은 '테디베어'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봉제인형으로 환생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가.

혐오스러움을 미화하는 발상의 전환에서 파생되는 미국 문화산업의 세계지배라는 엄청난 현실이 늘 안타까운 시대의 언저리에서 최근 불거진 진천의 '곰'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식용으로 둔갑된 사육 '곰'과 그걸 즐긴 지도층인사들의 기막힌 발상의 뒤집어짐,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떤 '문'을 만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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