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앉아
홀로 앉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7.0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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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아무리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가끔은 홀로 있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있다 보면 자신을 성찰하거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기가 어렵게 마련이다. 어떤 계기로든 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가 생기는데, 이것은 외로움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연을 응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서거정(徐居正)은 홀로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홀로 앉아(獨坐)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혼자 앉아 있노라니 찾아오는 손 하나 없고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빈 뜰은 비가 오려는지 어둑하구나
魚搖荷葉動(어요하엽동) 물고기는 연잎 흔들어 움직이고
鵲踏樹梢翻(작답수초번) 까치는 나뭇가지 밟아 흔드네
琴潤絃猶響(금윤현유향) 거) 금은 젖었건만 줄에는 소리가 남았고
爐寒火尙存(노한화상존) 화로는 식었는데 불씨는 아직 남아 있네
泥途妨出入(니도방출입) 진흙길이 출입을 막으니
終日可關門(종일가관문) 하루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어도 되네

시인이 기거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시를 따라 읽다 보면 그 정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결국 시인의 관찰력이 잘 발휘되었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전적으로 시인이 홀로 있는 덕인 듯하다.

시인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서 홀로 앉아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온전한 자유의 시간에 시인의 감각은 본연의 빛을 유감없이 발한다. 시인이 내다보는 것은 아마도 연(蓮)못이 있고 나무가 심어져 있는 뜰일 듯하다. 못 속에 물고기가 헤엄쳐다니고, 그에 따라 연잎이 흔들리는 모습이 시인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눈을 들어 올리자 나뭇가지에 달린 잎이 뒤집어 지는데, 까치가 그것을 밟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감각은 거침없이 사물을 관조한다. 홀로 있음의 즐거움에 한껏 매료된 시인은 이미 은자(隱者) 그 자체이다. 한데에 놓아두어 비에 젖은 금(琴)은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다. 방금 전까지 세속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금을 탄 것은 시인 자신이고, 이는 은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여름인데도 화로를 피울 만큼 서늘한 곳에 기거하는 것도 은자의 모습이다. 더구나 비가 내려 진창이 된 길은 아예 타인의 방문을 차단해 준다. 그야말로 세상과의 완벽한 절연이다.

홀로 있다는 것은 잠든 감각을 깨우는 축복이다. 외로움과 불안 따위가 엄습할 자리는 없다. 한여름 깊은 산 속에서 방에 홀로 앉아 비 오는 마당을 바라보라. 연잎이 흔들리고 나뭇잎이 뒤집히는 정경이 있고, 그 뒤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까치의 모습이 생생히 눈에 들어올 것이다. 모두가 혼자 있는 덕임이 분명하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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