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07.0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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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가을마다 축제를 했다. 이틀간 열리는 축제에 하루는 독후감 대회, 산문대회, 음악회가 이루어지고 하루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누구든 어느 대회에는 참석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학년 때 나는 독후감 대회에 나갔고 `죽은 시인의 사회'책을 읽고 쓴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다. 우연한 결과였는데 그 교내 대회를 바탕으로 다른 독후감 발표대회를 나가게 됐다. 그 대회는 자신이 쓴 독후감을 낭독하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가져간 것은 `백치 아다다'였다. 그 기억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창피하고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내가 썼던 독후감에 담당 선생님의 첨삭이 많이 이루어진 상태라 난 내 글이 아니라 생각했으며 그 자리는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느꼈다. 그날 수고했다며 선생님이 사주셨던 만두는 목이 메는 맛이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누군가의 것을 마치 도둑질 한 것처럼 부끄럽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나는 글을 쓰거나 숙제를 하거나 누군가의 글을 가져다 내 것처럼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성석제 글, 창비, 2017) 책은 부끄러웠던 그 기억을 상기시켰다. 유명화가가 된 주인공 선규는 초등학생 때 사생대회 장원을 받은 작품이 본인 그림이 아닌 다른 친구의 그림이었던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기억 때문에 선규는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매번 의심하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던 실제의 아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선규는 그 사건을 계기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최고의 화가가 되었는지 모른다. 반면 그림의 주인은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에게 선택이라는 화두를 이 작품을 통해서 던져준다.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선택들이 모여서 얼마나 다른 인생의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무수한 선택을 하고 왔다. 밥을 먹을 것인지 과일을 먹을 것인지, 노란불에 지나갈 것인지 차를 세울 것인지 엄마에게 전화를 할지 말지 등등의 선택을 했다. 밥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플 것이고 노란 불에 지나가서 지각을 안 했을 것이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도 엄마의 건강함을 확인했던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늘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선규도 그림 그리는 재능에 대한 자만심이 꺾인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선규 자신을 이제 그만 몰아세우고 좀 보살펴줬으면 한다. 우리도 지나간 잘못된 선택을 계속 되내어 꾸짖지 말고 나 자신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한 번 더 해주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그런 선택을 하는 하루도 가끔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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