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회장 사퇴가 마땅
이기흥 회장 사퇴가 마땅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0.07.06 1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2019년 1월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회의장. 수십 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당시 온 국민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고개를 90도로 숙인 이 회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국민에게 강도 높은 대책을 세워 체육계에서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로부터 채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26일.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유망주였던 최숙현 선수가 코칭스태프의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뉴스로 전해진 최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의 실체에 온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인면수심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감독과 팀 닥터의 폭력 행위는 수년에 걸쳐 오랫동안 거리낌 없이 이어졌다. 최 선수가 먼 이국 땅 뉴질랜드에서까지 극단적 선택의 실행을 고민할 정도로 그들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안겼다.

국민을 분노하고 허탈하게 한 것은 최 선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충분한 `골든 타임'을 관련 당국과 수사기관, 체육회가 허비했다는 점이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최 선수가 사망하기 4개월 20일 전인 지난 2월 6일 경주시청을 찾아가 최 선수가 훈련 중에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신고하고 조치를 호소했다.

하지만, 최 선수를 관리 감독했어야 할 소속 관청인 경주시는 최 선수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문제의 감독이나 팀 닥터에게 사실 확인은커녕, 소속 팀 선수들 누구에게도 직접적인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최 선수의 심리 상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결국 `가해자들을 꼭 처벌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최 선수가 `살려달라'며 내민 손은 경주시청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에서도 외면을 당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는 지난 4월 8일 최 선수로부터 `폭력을 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하지만, 센터는 피동적으로만 움직였다. 직접 나서서 조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피해자인 최 선수에게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는 등의 황당한 요구만 했다. 최 선수는 센터 조사관에게 “피해 입증을 제가 해아하는 거예요?”라며 반문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 실낱같은 희망마저 무너진 최 선수의 심경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최 선수가 사망한 지 나흘 후인 지난달 30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골프채를 들었다. 강원도 춘천시의 한 골프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협회 주최 자선 골프대회에서 시타를 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등 체육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TV에서 안방으로 전해진 화면에는 이들 체육계 고위직의 웃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한심한 것은 대한체육회가 이때까지도 최 선수의 사망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체육회는 이튿날인 1일에서야 뒤늦게 입장문을 내고 `조속하고 엄중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년 6개월 전, 심석희 선수 성폭력 피해 사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대한체육회의 안이한 사고방식과 대처 자세. 이제 더는 이기흥 회장이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바꿔야 조직이 바뀐다. 하물며 장관까지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임에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