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평면만 보는가
왜 우리는 평면만 보는가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0.07.0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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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결정 장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인권 문제를 다룬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여는 첫 문장이다. 선량한 시민은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 선량한 사람 속에 무의식적 차별을 하는 본인도 있다는 반성적 고백이다. 일상에서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의 하나이며 어쩌면 고급의사표현으로 착각하며 쓰는 말 중 하나가 `결정 장애'일 것이다.

“혹시 결정 장애 아니야?”

무심코 쓰는 이 결정 장애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사용한 기억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쓰는 일반 언어 중 차별성 언어들이 부지기수다.

“한국인 다 됐네요.”

이 말은 이주민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라고 한다.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 해석이 달라진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칭찬이라면 이주민의 관점에선 자신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표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주민 대개는 굳이 뼛속까지 한국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을 수도 있다. 역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보고 “미국인 다 됐네요.”라고 했을 때 온전히 긍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자신의 정체성만은 유지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세요”

역시 장애인이 가장 싫어하는 차별성 언어 중 하나이다. 칭찬 같지만 입체적으로 해석하면 당신은 지금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전달된다. 언어는 발화자 중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발화자나 수용자 모두 같은 의미로 해석하진 않는다.

이 외에도 출산율, 유모차, 여선생, 여학교만 떠올려 보더라도 누구 중심으로 해석된 언어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출생률, 유아차, 선생, 학교와 같이 시대에 맞게 교정할 일상 언어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이전까지 이 세상을 해석하는 기본 구도는 대체로 인간 중심, 남성 중심, 서양 중심, 백인 중심, 수도, 도시 중심이다. 그래서 여성의 인격은 무시되고 자연은 함부로 파괴되고 동물은 무차별 살육되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라는 정답, 그 시대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이 생산해낸 보편적 가치, 그것을 기준으로 여기며 단면적 사고에 무차별 길든 까닭에 대부분 현상을 바라보는 입체적 시각이 닫혀 있다. 잘못 구조화한 기존 가치가 해체되고 탈 중심으로 가는 이때 이질적인 것들의 융복합 사고를 권장한 도나 해러웨이의 사유는 많은 의미를 남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성향의 테크놀로지 역사가 `도나 해러웨이'는 공산 사유를 주장하고 사이보그 관점에서 인간을 탐구한 독특한 인물이다. 구질서가 체계화한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당하는 객체로 구조화한 기존 가치를 전복하고 모든 존재가 공생하는 수평적 동류항으로 인식한다. 그는 인간과 개 사이를 인간 중심의 해석인 반려 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 반려 종으로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개를 보듯 개가 인간을 볼 때 수평적 의미로서의 반려 종이라는 해석이다. 소나무도 땅속 균류와 연합하여 자신의 생명을 생산하듯 이 세상에 저 홀로 독생하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유기체 구조를 이루는 음양의 총합이다. 세상을 평면적으로 보는 시각을 벗고 입체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확장하면서 수평으로 가는 공동체 의식을 지닐 때 극대화한 개인의 행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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