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문화재 관리 탓 … 진천 `완위각'이 사라졌다
허술한 문화재 관리 탓 … 진천 `완위각'이 사라졌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07.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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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4대 장서각 중 하나·독립운동 역사 공간
군, 복원 계획 수립 중 지난 겨울 폭설로 무너져
천막으로 잔해 덮어 방치... 주춧돌·기단 등 흔적만
지역 역사학자 "문헌·발굴조사 결과 토대 복원해야"
진천 완위각의 붕괴전 모습과 붕괴 후 비닐천막에 덮인 모습.
진천 완위각의 붕괴전 모습과 붕괴 후 비닐천막에 덮인 모습.

 

조선시대 4대 장서각 중 하나로 꼽히는 진천 완위각(宛委閣)이 지난 겨울 폭설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문화재 관리에 허술함을 드러냈다.

특히 완위각은 충청권유교문화권사업에 포함되면서 진천군이 복원 계획을 수립하던 중 건물이 훼손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2일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마을을 찾았을 때 완위각은 보이지 않고 무너진 건물을 가린 파란색 비닐천막만 보였다. 주변에는 건물의 주춧돌과 기단, 기왓장이 흩어져 있어 완위각의 흔적만 가늠할 수 있었다.

완위각은 조선 숙종 때 유학자 이하곤(李夏坤)이 지은 전각으로 만여 권의 책이 가득 차 있어 만권루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조선 최고 문화의 메카로 이하곤 이후 200여 년 동안 호서지방 제일의 장서각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해 진천군에서는 2009년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문화재 지정이 미뤄지면서 완위각은 그대로 방치됐다가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주민은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소문은 많았는데 지정도 되기 전에 무너져서 이젠 볼 수 없다”면서 “관리도 안 되다 보니 겨울에 폭삭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완위각은 사설 장서각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의미가 큰 장소다. 한국사에서 조선후기 소론들의 집합처이자, 조선 말기 양명학자들의 집합처인 이곳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선으로 이어진 역사 공간이란 평가다.

지역의 역사학자는 “이제라도 문헌조사와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옛 완위각 터를 복원할 계획을 세우고, 독립운동과 연결된 양명학의 사상적 배경을 일깨울 수 있는 명소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며 “적어도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을 주도했던 소론계 명문가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강화학파의 마지막 집합소로서 완위각의 위상을 정립하고 위당 정인보로 이어지는 양명학파의 계보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충청유교문화권사업으로 송강정사와 완위각에 대한 복원사업을 추진하며 용역에 들어간 상황에서 완위각이 무너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로의 가치가 높아 시굴조사도 했고 도에 문화재지정 신청도 했었지만 안 됐다”면서 “시굴조사로 완위각과 주변의 건물에 대한 자료가 확보돼 있고 이하곤 선생이 완위각 주변을 스케치한 현장도 있는 만큼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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