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0.07.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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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드린다. 아버지는 오늘도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를 보면 흘러간 세월 속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큰 체구에 좀처럼 말이 없으시면서,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는 농토와 자그마한 집에 살면서도 늘 행복해 보였다.

중매 결혼한 아버지는 솥과 밥그릇, 숟가락에 쌀 한 말을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신혼이라고 해야 재미는 고사하고, 우선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타고난 힘을 밑천으로 이웃의 농사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언젠가는 괜찮겠지 하는 믿음만을 위안 삼아 살았다.

다행히 작으나마 땅을 사고 자식도 낳아 기르며, 가정을 이어나갔다. 봄에 농사를 시작해서, 가을에 거두어들인 후에는 인근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며 잠시도 쉬지 않았다.

오월 하순 보릿고개가 되면 아직 익지 않은 보리를 베어다가 끼니를 때우고,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없이 무슨 일이든 하면서 다가올 가을을 기다렸다. 가을이 되었다고 해서 푸지게 걷을 형편도 못되었지만, 그나마 수확에 만족했다.

농촌에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집앞 남한강 가의 자갈을 걷어내고 밭을 만들었다. 리어커를 이용해 흙을 깐 다음 그곳에 고구마를 재배해 갑자기 고구마 부자가 되었다. 싸리나무로 통가리를 만들어 고구마를 가득 저장했다. 겨우내 찌고, 굽고, 깎아 먹으면서 처음으로 풍요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삼 년의 고구마농사를 끝으로 어제까지 없었던 땅임자가 나타나 밭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좌절은 없었다. 고구마를 재배했던 밭은 잃어버렸지만, 강과 더 가까운 자갈밭을 다시 밭으로 만들어 밀을 재배했다. 때마침 면직물에 관심이 일어 누에도 치면서 궁핍을 벗어났다.

아버지 나름의 즐거움도 키워갔다. 술이다. 틈만 나면 아버지는 술을 가까이했다. 힘은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쌀섬을 두 손으로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었으니까. 술을 아무리 마셔도 이튿날 아침이면 평상시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해장국 따위는 필요 없었다.

술을 많이 하니까 어머니가 사정을 했다. “이 양반아, 술 좀 작작 마셔”하면 “떠들지 말아. 먹다 죽는 건 한이 없어” 하셨다. 온몸으로 열심히 일하고, 술을 친구같이 삶을 즐기셨던 아버지에게 중풍이 왔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풍으로 술과는 멀어졌고, 침과 한약으로 버티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 노력의 결과였는지 중풍이 완쾌됐으나 이미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셨다. 비록 술을 마시지는 못했어도 마음은 평안해졌다.

청주로 이사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만나고, 일상적인 삶을 보내시던 중 두 번째 중풍이 아버지에게 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더 심해서 자리에 누우셨다. 어머니의 간호에도 차도는 없고, 아버지는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렇게 사 년여의 세월이 갔다. 아버지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어머니와 누나, 매형님, 형님과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머니가 끓여온 미음을 모두가 돌아가면서 아버지에게 떠넣어 드렸다.

미음을 잡수신 아버지는 잠시 후 고단했던 이 세상과 작별하셨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면서 살아오신 아버지. 호강 한번 못하시고, 약간의 논밭을 일구고 가꾸면서 자식들을 위해 몸바치신 아버지는 그렇게 하늘로 가셨다. 지금 내 집에 사진으로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 부디 하늘에서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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