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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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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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행복과 불행
혜전 주지 스님(석문사)

옛날 북방 국경 가까이에 점을 잘 치는 새옹이란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집에서 키우는 말이 아무 까닭도 없이 도망을 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들어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동정을 하며 위로하자 그가 말했다.

"이것이 복이 될 줄 어찌 알겠소."

그럭저럭 몇 달이 지나고, 하루는 뜻밖에 도망을 쳤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 한 필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횡재를 했다며 축하했다.

그러자 그 영감은 또 "그것이 어찌 화가 되라는 법이 없겠소"라고 말하며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하나 더 생기자 전부터 말 타기를 좋아했던 새옹 영감의 아들이 데리고 온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그만 말에서 덜어져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또 몰려와서 아들이 다리를 다친 데 대해 안타까워하며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영감은 "그것이 복이 될 줄 누가 알겠소"라고 하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런 후 1년이 지나 오랑캐들이 국경을 넘어 대규모의 침략을 감행해왔다. 장정들은 일제히 징병되어 적과 싸웠다.

국경 근처의 사람들이 열에 아홉은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유독 새웅 영감의 아들만이 말에 떨어져 다친 다리 때문에 징병을 면해 목숨을 건진 것이다.

행복(幸福)의 사전적 의미는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행(不幸)은 '행복하지 못함, 운수가 언짢음, 언짢은 일을 당함'이라는 사전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글자 그대로라면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전무후무한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원칙'에 대해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등을 꼽았다.

부처님께서는 "부모를 잘 섬기고, 처자를 아끼고 보호하며 올바른 생업에 정진하라. 이것이 인간에게 최상의 행복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라고도 한다.

외국의 어떤 시인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들 하기에."하며 노래를 했다. 그러나 행복은 그 산 너머에도 또 그 산 너머에도 없었다.

'무지개'를 찾는 소년의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인생은 끊임없이 행복을 얻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무지개를 잡지 못하듯 인생도 후회스럽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선인들은'소욕지족(小欲知足)'이라 하여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을 알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했다.

남이 버린 것도 기쁘게 활용해 쓸 수 있고 적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이 커서 방이 수십 개라도 내가 누워 잘 곳은 하나뿐이요. 땅이 아무리 많아도 죽어 묻힐 곳은 반평이면 된다.

문제는 "내가 과연 행복하게 느끼느냐"에 달린 것이다.

옛 선인들은 "영화가 지나치면 화가 된다"고 알았기에 스스로 근신하고 삼갔다.

오늘날 물질만능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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