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0.06.2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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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청주는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새벽 5시인데 주말이라 아직 잠자리에 있을 아들한테서 카톡을 받았다. 웬일인가.
“엄마 바쁘세요?” “내가 바쁠 일이 뭐가 있어. 아무리 바빠도 아들 연락은 반갑지.”했다. 부탁할 게 있단다. “아들 부탁이라면 열일 제쳐 놓고 해줘야지.”했다. 구글 기프트카드를 구매해야 한단다. 기프트카드가 뭔지도 모르지만 그러마 하고 냉큼 대답했다. 20만 원짜리 3장만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구입해 달란다. 기프트카드를 구입해서 종이 포장을 뜯고 카드 뒤에 라벨을 긁으면 영어 대문자로 된 숫자가 나온단다. 그걸 사진 찍어 보내 주면 된다는 거다. 속으로 제 식구한테 안 하고 나한테 하지, 혹 제 식구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어미한테 부탁하겠지 싶어 묻지 않았다. 엄마한테 좀처럼 이런 부탁을 하는 아이가 아닌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엄청나게 큰돈도 아니고 해서 서둘렀다.
그런데 재촉이 심하다. “이 녀석아 그렇게 급하면 어제 해 달라고 하지 그랬어”하면서 농담도 했다. 한편으로 부탁하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자식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성인이 되면서 본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가도 때론 내가 해줄 게 없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결혼하고 삼십년이 넘게 친정어머니 김치를 먹었다. 나도 이순을 넘겼고 팔순 노모에게 김장을 갔다 먹는 것도 민망스러웠다. 이제는 맛없어도 내가 해보자 마음먹고 작년에 김치를 담갔다. 그런데 노모가 김장 언제 할 거냐고 전화하셨다. 담갔다고 했더니 어떻게 했냐면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해마다 김장해주는 것이 아직은 자식들에게 당신 존재감을 확인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담글 수 있어도 못한다고 엄살을 부려야 했던 것이다.
한참 카톡을 주고받았다. 대화도 아들 말투였다. 통화를 해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연결이 잘 안 된다. 전화기는 액정이 나가서 AS 맡겼다는 것이다. 전화기가 없는데 어떻게 톡을 하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아들 사진이었다. 나는 톡을 계속하면서 남편한테 통화를 해보라고 했다. 아들이 잠에 취해 전화를 받았다. 시간차도 있고 휴일이니 아직 잘 시간이다.
어미와 자식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돼 있어 자식에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면 몸으로 마음으로 느낌이 온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앞뒤 분간을 못 한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금방 자식이 어떻게 될까 봐 좌불안석이 된다.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큰 사회 문제다. 전화사기 사건 한두 번 안 당한 사람 없을 것이다. 훔칠 걸 훔쳐야지 그 약한 어미 마음을 훔치려고 사기를 치다니. 자식이 눈물을 흘리면 부모 눈에서는 피가 흐른다. 자식들 목소리만 어두워도 부모는 벌벌 떨리고 간이 내려앉는다. 더구나 아들은 나라 밖에 있으니 난 더 예민하다.
아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제 식구한테 부탁하지 시골에 있는 엄마한테 부탁하겠느냐며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생각할수록 헛웃음만 나온다. 감쪽같이 속을 뻔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사기수법만 날로 높아지는지.
코로나 19로 불신의 사회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데, 이런 일까지 겪고 보니 전화받는 것도 두렵다. 열심히 일해서 살아갈 생각보다는 남의 주머니 털어 먹고살려는 사람들 때문에 선량한 마음에 경계심만 는다. 사기꾼 아들을 둘 뻔했다. 이런 걸 두고 어이가 없다고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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