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과 매몰(1)
발굴과 매몰(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6.2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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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청주·충주 간 자동차전용도로공사가 진행되면서 접도지 인접 밭에서 일하노라면 종종 먼지를 뒤집어써야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밭 옆에 세워놓은 차 또한 늘 먼지에 싸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살수차기 연실 물을 뿌려 대지만 덤프트럭, 굴삭기, 불도저, 페로이다 등 각종 중장비가 뿜어대는 흙먼지를 완벽하게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얼른 공사가 완공되기를 기원해 보지만 2025년 완공이라니 5년은 더 먼지를 뒤집어쓰고 밭일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런 중에 불도저를 운행하는 분과 교분을 쌓았다. 휴식시간이면 함께 닭장과 토끼장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우리네 살아가는 현실 애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그도 청주의 한적한 외각지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단다.
그런데 벌써 며칠째 그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장비가 고장이 난 것일까? 혹시 사고라도 났나? 내일은 볼 수 있겠지. 또 내일은……. 결국 참다못해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안부를 묻자 아픈 것도 아니고 장비 고장도 사고도 없었다며 청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그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여기 음성 현장엔 문화재 발굴 중이라 발굴이 끝날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르니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작업하는 광경은 도로공사 팀의 작업과는 뭔가 다른 공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불도저나 덤프트럭, 페로이다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도로공사가 아니라 문화재 발굴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큰형님께서 나오셔서 저 장비작업 하는 곳, 그쯤에 작은어머니 묘가 있는데 참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도로구획에서 떨어져 있었고 물론 보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성격 급한 형님이 진즉에 올라가 보셨겠지만, 몸이 불편해 궁금해만 하고 있다는 거였다. 아무리 궁금하고 의심스럽다지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다른 작업도 아니고 발굴하는 전문인들이 묘를 어떻게 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고 며칠이 흘렀다. 도로작업은 여전히 중단 상태였고 문화재 발굴팀들만이 연실 무엇인가를 발굴하고 있었다. 나도 내심 무엇인가 나올 것 같았다. 동네 이름이 능무링이다. 본래 능모롱이, 능모랭이였다. 능모롱이는 능이 있는 모퉁이에 있던 마을이라는 이름에서 유래 되었으리라. 또 능모랭이는 모퉁이의 방언으로 모가지게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로 능을 돌아가는 곳에 있다는 모랭이의 어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위의 지명 중에 능끝들이 있는데 능의 끝에 있는 들이란 말이다. 또한 왕재고개는 임금 왕에 고개 재로, 왕과 연관이 있는 고개이다. 이런 지명을 가지는 지역이니 문화재가 나올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 단체에 책임을 졌고 음성군 문화재심의위원인 나로서는 여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큰형님이 다녀가신 다음 날 사촌 동생이 황급히 찾아와서는 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말을 건넸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도로 접도구역에서 제외됐고 공사 중단 중에 있는데……. 그렇담 문화재 발군단의 구역인가? 부랴부랴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 주위의 나무가 제거되어 위치를 분간키 어려웠고 묘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굴삭기로 깨끗이 밀려져 있었다. 땅속이나 큰 덩치의 흙, 돌 더미 따위에 묻혀 있는 것을 파내 세상에 밝혀내는 발굴 작업이 매몰 작업이 되었나? 물론 묘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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