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염화 5
세존염화 5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0.06.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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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竹 二三升野水(죽견이삼승야수) 대나무 홈통에 두세 되의 산골짜기 물

松窓五七片閑雲(송창오칠편한운) 소나무 창가에는 예닐곱 조각의 한가한 구름

太平消息無人識(태평소식무인식) 태평한 이 소식을 아는 이가 없어

盡日燒香獨掩門(진일소향독엄문) 홀로 종일토록 향을 사르며 문을 닫고 있네.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도 여름으로 가는 나뭇잎에 미풍이 살랑이네요.

이 시간에 살펴볼 공안은 제법실상형 공안인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5입니다.

염화미소(拈花微笑)와 같은 말로 파안미소(破顔微笑)가 있고 비슷한 말로는 파안대소(破顔大笑)가 있는데요. 이들은 전혀 궤를 달리하여 그렇다고 파안미소(破顔媚笑)는 아닙니다. `여인의 미소가 아름답다.'할 때 눈썹 아미의 미자를 쓴 媚笑(미소)가 아닌 작을 미자 微笑(미소)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미(微)는 미세하다는 뜻이지요.

결국 가섭존자의 파안미소(破顔微笑)는 간단히 말해서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가 아닌 `얼굴을 좀 움직거려 피식 웃었다'는 역설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처님께서 실상무상(實相無常)을 내내 강조하셨는데`꽃을 들었다'는 것은 실상무상에서 나아가 보리반야를 내세우셨다는 것이고 가섭은 이것마저 부정하여 버렸다는 말이지요.

전자가 여래선적이라면 후자는 조사선적인 장면이라 하겠는데요. 조사선에서는 곧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물건도 이념도 드러내서 내세우게 되면 무정법에서는 이미 어긋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사상도 일찍이 실체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지만 최근에는 서양철학도 유정법(有定法)에서 무정법(務定法)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첨단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나 `확실성의 종말'은 이제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전 우주가 한 생각에서 비롯되며 정신이 없으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고 정신인 그것이 인식하는 대상을 실체로 만들어낸다고 하는 불교의 교리와 유사하지요. 가섭은 스승의 가르침까지도 초월하여 일체의 존재와 생각까지도 넘어서 버렸다는 말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6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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