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잘'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6.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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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공원 단풍나무 아래가 부산스럽다. 나무둥치를 보호하기 위한 쇠구조물 사이로 개미들이 집을 여럿 지어 놨다. 그런데 개미굴 앞에서 실랑이가 한창이다. 노린재 시신을 두고 의견이 맞지 않아 상의 중인지, 아니면 다투는 중인지 여하튼 서로 끌고 가려 서너 마리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제는 태양이 북반구 한가운데서 내리쬔다는 하짓날이었다. `감자 환갑'이라 부르는 하지도 지나고 우리 앞에는 더위의 복병 `삼복'이 기다리고 있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차는 날이다. 그런데 개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위도 잠깐 잊고 말았다.

제각기 할 일이 있는지 바쁘게 종종거리며 다닌다. 어디서 잡아 왔는지 제 몸만 한 애벌레를 소중한 양식인 냥 이고 가는 개미, 마른 나뭇잎을 이고 굴로 들어가는 개미, 참 열심히들 살고 있다.

개미 하면 부지런하고 성실함의 대명사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저 밑 개미굴 어딘가에는 상비군 격인 `노는 개미'가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찍이 사회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모든 개미가 일하는 것이 아닌, 일정한 비율의 개미들은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몇 년 전 일본의 연구팀에서 개미집단에는 항상 20~30%의 일 하지 않는 개미가 존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노는 개미'는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집단 존속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일하는 개미가 동시에 일할 수 없게 된다면 알을 돌볼 개미가 사라져 그 집단은 멸망을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미의 생존법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해야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무조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놀기도 해야 그 집단의 존속이 가능하다니.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한데 이제야 개미의 생존법을 보고 깨닫다니 어리석기가 그지없다.

요즘 많은 회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곳이 많다. 아마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 중에서는 집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를 얻고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 또한 길어지고 있다. 우리 집 작은 딸아이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요즘 딸아이에게 안부 차 전화를 하면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역력하다. 집에서 일하니 밤을 새는 날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출근을 했더라면 수당이라도 받지만 집에서 일하니 그럴 수도 없고, 당연히 의욕도 떨어지고 몸도 안 아픈 곳이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니 바깥 공기도 쐬지 못하고 건강한 것이 더 이상할 일이다. 오늘은 딸아이가 당장 사표를 쓰고 싶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러라고 했다. 딸아이의 말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나는 전화를 끊고 정말 사표를 내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시간의 연장이 노동자를 위한 생활 수단의 가치 저하를 가져온다고 했다. 또 이러한 노동시간의 연장은 노사 계급 간의 투쟁을 불러올 수 있으며 자본주의의 미래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사회는 사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얼마나, 어떻게 `잘'사느냐가 관건이다. 이제는 `열심히'사는 시대는 지났다. 이는 미물이라 하는 개미의 생존 법칙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종족의 생존을 위해 `놀'줄 아는 개미야말로 진정 `잘'사는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찌물쿠는 날을 식혀줄 장맛비가 내린다고 한다. 부디 이 비가 단비가 되어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잘'견뎌낼 수 있게 스며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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