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내륙선, 백 년의 꿈
수도권 내륙선, 백 년의 꿈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6.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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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기차가 점점 다가올수록 황제의 두려움도 커졌다. 혹시 저것은 하늘의 뜻을 방해하기 위해 상제(上帝) 몰래 내려온 살성(殺星)의 변신이거나, 다음에 오기로 되어 있는 흑제(黑帝)가 성급하게 배암의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리하여 한입에 나를 삼키고자 저토록 맹렬하게 덮쳐 오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오오, 한칼로 베기에는 너무 크고 굵은 배암이구나. 더구나, 지금 내 손은 텅 비었으니 삼 척(三尺) 장검은 커녕 세 치 송곳도 가지지 못했으니…… 그러자 황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공포와 전율에 휩싸였다' (황제를 위하여 / 이문열)

우리나라에 처음 철도가 개통된 것은 1899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이다.

철도는 근대화의 원동력이자 상징이다. 여객 화물 문화의 수송량과 속도에서 다른 운송수단을 압도하며 근대국가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대규모 자본을 끌어모아 광범위한 지역에 장기간 설비를 투자하고 대규모 인력을 채용해 설비투자가 완료된 시점부터 막대한 이익을 뽑아내는 대기업 경영모델이 철도산업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철도의 부설은 열강의 식민지 침탈의 선봉장 역할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하여 황제의 공포와 전율은 일제의 수탈과 억압의 상징인 철도에 대한 상처와 울분으로도 읽혀진다.

일본은 경부선 노선을 선정하기 위해 대규모 답사를 5회 실시했다.(근대로 열린 길, 철도 / 정재정)

제1차 답사에서는 연선의 인구가 조밀한가 희박한가, 경지가 넓은가 좁은가, 물화가 많은가 적은가, 교통이 빈번한가 한가한가 등을 비교 검토하여 서울(남대문)-용인-안성-진천-청주-보은-상주-대구-밀양-부산까지 총 240마일 노선을 택했다.

일본이 러일전쟁 직전에 실시한 제5차 답사에서는 부산-서울-만주의 열차운행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또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북부에서 전의-회덕-영동을 잇는 직행선을 채택했다.

이 노선은 일본 군부가 주동이 되어 실시했던 제4차 답사노선과 비슷하고 오늘날의 경부선과 대체로 일치한다.

올해 1월 20일 진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수도권 내륙선 철도 유치 추진위원회 발족식과 민관 합동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발족한 유치 추진위는 진천 민간 단체·기관 대표 등 10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어 송기섭 진천군수는 5월 18일 중앙부처를 방문해 수도권 내륙선 철도 구축 사업에 대해 건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 청주시와 안성시, 진천군 등 3개 시군이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용역에 착수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19일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 송기섭 진천군수, 최문환 안성시장 권한대행, 서철모 화성시장이 경기도청에서 수도권 내륙선 건설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수도권 내륙선은 동탄~안성~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충북 혁신도시~청주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총연장 78.8㎞의 고속화 철도다. 추정 사업비는 2조5천억원이다.

이 철도망이 구축되면 동탄에서 청주 공항까지 34분 이내에, 안성에서 수서까지 30분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도권 내륙선 노선이 일본이 경부선 철도 부설을 위해 실시한 제1차 답사노선 북부지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1892년과 2020년이 짊어진 사회 경제적 배경, 그리고 주변 산업 지도의 차이와 변동에도 불구하고 두 철도노선이 겹치는 상황은 우연으로 넘겨 버릴 수만은 없는 묵직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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