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퍼즐
직소퍼즐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20.06.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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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플라타너스 잎이 비에 젖어 외줄 타듯 기우뚱한다. 잎에 내려앉던 비가 또르르 바닥에 미끄러져 내린다. 베고니아꽃이 젖은 채로 미끄럼을 구경한다. 비에 젖은 플라타너스도 베고니아도 싱글싱글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그들 세계로 빨려드는 것 같다.

아들이 직소 퍼즐을 들고 왔다. 직소 퍼즐은 작고 이상하게 생긴, 서로 연결 가능한 여러 조각을 조립하여 완성한다. 대개 어떤 그림의 부분을 나타내는 데 다양한 종류로 원형의 구조가 되기도 하고, 광학적인 환상을 보여주는 때도 있다. 조각은 백 개가 안 되는 초보용부터 몇천 개가 넘은 고급형이 있다. 퍼즐 상의 일반적인 그림은 자연이나 건축 혹은, 패턴 형태이다. 드물게는 개인 사진을 퍼즐로 만드는 서비스를 제작하는 회사도 있다. 완성한 퍼즐은 창작품처럼 벽에 장식해놓기도 한다. 엄마를 위해 사 왔다는 퍼즐은 무려 2000 퍼즐이다. 저걸 어찌 맞추나 싶어 시작도 전에 멀미를 느낀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퍼즐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퍼즐은 인내가 필요하다. 맞추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게임에 빠지듯 맞춰가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 하나 남은 퍼즐을 맞출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몇 년 전 아들과 합작으로 1000 퍼즐을 완성했을 때의 짜릿함이 전해오는 것 같다.

인생을 퍼즐로 그린다면 나는 어떤 퍼즐을 만들까, 돌아보니 오십 년의 시간이 아득하다. 아득하기만 할 뿐 인생의 그림으로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문 상처가 먼저 떠오른다. 사람은 상처받고 치유 받으면서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사랑한 건 가장 큰 후회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는 하나의 길을 택했다. 혜택보다는 책임이 큰길이었다. 책임을 잘하겠다는 다짐은 사랑의 유통기간이 끝나자 함께 무너져 내렸다. 권리 없는 책임은 내 몸 전체를 지배하다 정신까지 지배했다. 돌파구로 선택했던 건 술이었다. 그릇이 작은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몸과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몸은 환경의 지배에도 원래의 자리로 가고자 하는지 몇 번의 술 반항에도 지금껏 나는 술을 못한다.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내줄만한 것이 없고, 잊고자 가까이했던 술도 친구로 만들지 못했다. 살다 보면 나만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큰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의 투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감내하는 고통 또한 그렇다. 그러나 쓰임의 그릇이 다르다 하더라도 상처는 상처일 뿐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평행선이 되기도 한다. 비슷하기에 놓치는 부분이 많다. 퍼즐도 마찬가지다. 조각을 맞추느라 삼십 년이 걸려도, 조각을 한두 개 잃어버려도 완성된 퍼즐을 보면 기분이 좋다.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기억을 잃어버려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명화의 퍼즐이 되지 못해도 우주를 빛내는 각각의 별들처럼 우리는 한켠의 빛이다.

푸른색 퍼즐을 놓고 고민하자 아들이 슬쩍 옆으로 밀어준다. 모르는 척 슬그머니 맞추자 “우리 엄마 짱!” 한다. 오십 년의 퍼즐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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