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막
내 안의 사막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6.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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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사막에 가고 싶다. 가도 가도 모래언덕만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 빗살무늬를 그리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그 위에 발자국 무늬를 찍고 싶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인 듯 처음 길을 내어 보았으면 했다. 거기서 철저히 혼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어느 시인은 사막에서 너무도 외로워 자기 발자국을 보고 뒷걸음질로 걸었다고 했다. 훗날, 그때 느낀 외로움은 너무도 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던가. 그토록 외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 깊이를 따라가 보고 싶다. 넋을 놓고 바람의 뒤를 따르면 닿을 수 있는 경지일까.

이왕이면 사막에서 하룻밤을 자보고 싶다. 여행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습관처럼 별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까만 밤하늘의 별무리가 주는 황홀경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겨 있었다. 일제히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빛이 보고 싶어 나는 안달이 났다.

두 얼굴을 한 사막과 대면하고 싶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야누스를 한 얼굴이 보고 싶었다. 뜨거운 태양으로 숨이 막히는 낮과 다시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가 달려드는 밤의 이중성을 확인하려 했다. 극과 극을 달리는 기후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그래도 실망만을 주는 건 아니다. 위로하듯이 아름다운 일몰과 밤하늘을 선사한다. 오래도록 깊게 각인시킨다. 여행객들에게 저마다 가슴에 지문으로 남는다. 그것이 사막을 기억하는 이유다.

어느 사이에 사막이 무턱대고 들어섰다. 한 사람을 미워한다는 건, 원망한다는 건 내 안에 사막을 들이는 일이다.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온도는 열대야로 치솟는다. 살갗이 벗겨지는 고온은 분노로 끓는다. 점점 건조하고 쓸모없는 불모지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늘어나고 원망이 깊어갈수록 극한이 엄습해온다. 태양이 뜰 때까지 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온몸이 떨리고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순간 아주 냉정한 나와 맞서는 시간이 온다. 이어 과녁을 겨냥한 화살이 날카롭다. 시위가 팽팽해질 때마다 텁텁한 모랫바람이 인다. 버석버석한 먼지가 사막을 덮는다. 주위의 사물들이 어둠으로 덮인다.

내 옆에는 깜깜하여 아무도 없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 누구도 보이질 않는다. 혼자다. 모래벌판의 구석구석까지 외로움의 한기가 퍼진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자 허허벌판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 된다. 짠 외로움이 나의 폐부까지 파고들어간다. 덧난 상처가 또다시 살을 에는 쓰라림을 견뎌야 하는 혹독함이다. 밤새 한숨의 잠도 허락하지 않던 치통보다도 더한 고통으로 온다.

자기에게 버림받은 상태가 외로움이라 했지. 이렇게 나를 버릴 수 없는 일이야. 그러기엔 나는 나를 사랑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예까지 오느라 고생한 나를, 잘 참아준 나를 누가 뭐라 한들 어쩌랴. 쓰러지려는 나를 무수히 일으켜 세우며 온 길이다. 누군가 자기의 잣대로 비난할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일 뿐이다.

나는 지금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에서 종종 항로를 잃으면 가족이 있어 헤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침반이 되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목하 나침반의 자침이 뜨거운 열기에 좌표를 잃었다. 자꾸만 시침 빠진 시계처럼 흔들거린다. 이 감옥에서 탈출할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사막에서는 지도가 아닌 나침반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는 법이다. 아직 한 번도 고장이 난적이 없었다. 나의 나침반을 믿는다. 머지않아 제 역할을 해주리라. 다시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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