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저드의 `특수한 사물' (specific Object)
도널드 저드의 `특수한 사물' (specific Object)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20.06.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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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똑같은 단위의 모듈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구조를 지니고 3차원의 공간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다. 저드는 왜 이런 작품을 하게 된 것일까?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미니멀리즘은 1967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사조로서 당시 지배하고 있던 개념미술을 등에 업고 그 분기점에 위치해 있다. 미니멀리즘은 이전의 추상회화가 어떤 형태를 추상화해서 집약시킨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집약적인 의미로서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작품에 형태와 색채만 남긴다. 따라서 미니멀리즘 미술의 특징은 극단적 간결성으로 인해 ABC아트, 환원적예술, 제거적예술, 쿨아트, 리터럴아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일한 크기, 동일한 색채, 동일한 재질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모듈은 저드의 아이콘과도 같은 것이다. 저드는 이 획일적이고 동어반복적인 모듈을 공간에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명백하고 강조된 효과를 가져다주고자 하였다. 그저 하나에 뒤따르는 또 다른 하나가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 각각의 단위들은 서로 상관구도를 지니지 않는다. 저드는 그의 이러한 활동을 전통적 회화와 조각에 대한 대안적 방향으로 여겼다. 그는 모든 회화는 환영적이어서 그것의 실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공간적 환상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화와 조각을 넘어선 임의의 물체인 그의 모듈을 그는 `특수한 사물'이라 칭하였는데, 그는 미술에 있어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물음을 던진 것이었다. 그것들은 더 이상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저드는 이 `특수한 사물'로 대상과 세계와 체험에 관한 문제를 가장 원초적인 상태로 환원시킴으로써 현대미술의 시각개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저드는 그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삼차원적 공간에는 관념적 세계가 있다는 현상학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작품이 단지 관람객이 보는 대상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은 상호 관계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특수한 사물'은 공간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식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삼차원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그의 사물은 관객이 서는 방향에 따라 다른 형상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오브제는 그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시각각 다른 존재로 다가오게 되어 관객과의 상호 관계 속에 있게 된다. 말하자면 그 사물이 관객을 보고 관객은 자신을 보고 있는 그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관객은 감각적 경험이 아닌 지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도널드 저드는 이처럼 회화의 평면성, 기교성, 그리고 자기표현이 곧 예술이라고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작품 속의 일루저니즘을 제거하고 세계존재의 의미,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함으로써 자기반성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또한 `그의 특수한 사물'을 통해 미술작품에서 감각적 요소를 제거하여 어떠한 작품에의 해석을 거부함으로써 현대미술의 개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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