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의 한국판 뉴딜
사람중심의 한국판 뉴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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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무려 48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뚜렷하게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공익광고가 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장기집권의 도구가 되었던 10월 유신의 필요성을 강조한 TV광고였다. 갓 쓰고 도포 입은 남성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불편을 참지 못하고 내리는 모습의 흑백영상이다. 그 영상에는 `우리 체질에 맞는 우리 헌법'을 강조하는 해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소위 `한국형 ooo`, '한국식 ooo`은 그 때부터 효시가 되었고, 훗날 김영삼 정부시절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주입되면서 '국뽕`이 절정의 극치를 이루는 하수상한 시절도 있었다.

뉴딜이 지천으로 극성을 이루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떨쳐내려는 안간힘의 와중에 넘쳐나고 있는 이번 뉴딜에는 한국판이라는 수식어가 결연하게 붙어있다.

뉴딜의 바람은 지역에서도 어김없어, `충북형 뉴딜'을 둘러싸고 집행기관과 지방의회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뉴딜(New Deal)은 영어사전에, (다시)처음부터 새로 하기, 다시 하기의 대표적인 뜻으로 풀이된다. 그 해석에 루스벨트 정권과 혁신정책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흥미롭다. 32대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전격적으로 펼친 뉴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루스벨트는 미국을 덮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농산물 생산량 조정 △테네시강 유역 개발 및 후버댐 건설로 공공일자리 창출 △예금자를 보호하는 연방예금보험공사 및 주식시장을 규제하는 증권거래위원회 설립 등의 혁신 정책을 시행했으며, △노동조합 결성권, 단체교섭권 보장 △최저임금, 최고 노동시간 규정 △실업급여, 고령연급, 은퇴연금의 제도가 뉴딜(New Deal)을 통해서 처음 도입되었다.

그런 뉴딜이 한국으로 건너와서는 정부의 재정 투입을 통한 건설과 토목공사로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극히 일부분만 강조되어 알려졌을 뿐이다. 노동자 보호에 대한 근본과 국민복지의 근간을 만든 속뜻을 나 역시 사회과목의 공적교육을 통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경제 대공황 탈출을 위한 혁신에서 `사람'은 사라지고 지금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는 토건공화국의 토대를 만드는 의식의 혼돈으로 전락한 셈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플랫폼 근로자 등 허약하고 위태로운 계층과, 방사광가속기 탓으로 미루는 토지자본의 끝없는 욕망과 뒤섞여 있다.

“단순히 위기 국면을 극복하는 프로젝트를 넘어서는, 총체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대전환을 이뤄내게 하는 미래비전”이라는 문재인대통령의 화두로 한국판 뉴딜이 발표됐다.

대선공약이후 이미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에 이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휴면 뉴딜에 이르기까지 가히 뉴딜의 홍수시대를 만나고 있다. 한국판 뉴딜에는 △데이터, 5G 국가망, 인공지능(AI)강화 △농어촌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의 디지털 뉴딜과 더불어 그린 뉴딜 분야의 △공공시설 에너지 효율화 등 녹색 인프라 강화 △태양광, 수소 등 저탄소 에너지 확산, 고용안정을 위한 휴먼 뉴딜 정책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 △한국형 실업부조로 통칭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등을 대표적 정책으로 도입하고 있다. 2025년까지 무려 76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당장 2022년까지 5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4차산업 시대 기술의 총아로 여겨지는 디지털 뉴딜의 경우 기계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고, 초침을 다투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이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유효하다. 사람은 그만큼 멀리 있다는 말이다. 급조된 충북형 뉴딜 또한 마찬가지다. 정작 위기의 사람, 루스벨트 말처럼 경제 피라미드 바닥에 있는 `잊혀 진 사람(forgotten man)' 대신에 기껏 보도블럭 교체로 대표되는 공간에 사고가 갇혀 있다.

뉴딜은 이 나라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개혁의 Deal이어야 한다. 넓게 사람을 쓰고, 깊게 코로나 이후를 성찰하며 함께 가는 길을 찾는 사람중심의 뉴딜, 2020년 청주시도시재생대학 슬로건 `넓게, 깊게, 함께'는 이런 의미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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