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함과 지킴
구함과 지킴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0.06.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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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날 한식의 눈이 커졌다. 어느 중소기업의 취업광고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한식은 수없이 취업을 위해 도전을 해왔지만 번번이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만큼 한식은 오랜 시간 백수로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수의 시간은 고통이었다. 한식도 백수를 벗어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 봤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은 아쉽지만 바라던 일자리들을 뒤로하고 좀 더 눈높이를 낮은 곳으로 돌려야 했다.

그렇다고 그곳에 일자리가 언제나 한식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식은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러다 어느 중소기업이 문을 열어주었다. 비록 버거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식은 소중하게 얻은 일자리였기에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살피고 또 살폈다. 거기다 실수 같은 것은 용납하기 싫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일을 잘하려고 해도 자꾸만 어긋나 버리고 그의 느린 업무처리는 생산성이나 효율을 떨어뜨리게 되면서 사람들과도 거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툭하면 기일을 어기는 결과가 종종 초래되곤 하였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한식은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하긴 일일이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또 보면 시간은 소비되고 그만큼 더디고 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다시 한식에게 백수의 멀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휴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한식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또 한 번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다. 한식은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빠르게 서둘렀다. 하지만, 빠르다고 모든 일이 좋은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두른 일들이 엉망이 되어 기대했던 효율은 고사하고 회사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주변에서 한식을 비난하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한식은 그의 실수를 깨닫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서둘렀던 탓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세상은 그의 사정을 이해해 주기보다 눈앞의 현실은 냉정하게 한식을 단두대에 세워 놓고 앞으로 일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지 묻고 있었다. 무릇 그렇듯이 누구에게나 일자리는 무척 소중한 것이다. 한식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의 생각대로 그리 쉽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의 앞서 갔던 생각은 어긋나 버리고 그 모든 것이 건성건성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제 한식에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기에 앞서 어디에 머물 수 있는지 그것이 더욱 궁금해져 갔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일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 지켜야 할지 물론 다양한 면들이 있겠지만 우선 일자리 적응이 요구될 것이고 또한 그러려면 그에 맞는 조화가 따라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때론 껑충거려도 토끼처럼 빠르게 때론 기어가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맞춰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완급의 조절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오히려 불행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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