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독립운동가 마을 옥산의 덕촌리를 찾아서
청주의 독립운동가 마을 옥산의 덕촌리를 찾아서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06.15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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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시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충청도(忠淸道)를 한마디로 `충성스럽고도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청주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도시로 유명한데, 그 가운데서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위치한 덕촌리 마을은 자랑스런 이름인 `독립운동가 마을'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덕촌리 독립운동가 마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위원회 주관 기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청주시의 1호 마을 아카이브 사업으로 조성되었다. `덕촌리 독립운동가 마을'조성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첫 번째가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 고장 근대교육의 산실이 됐던 `덕신학교'의 재발견과 함께 청주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된 점이다.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187 3~1911)은 한말애국계몽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했던 분이다. 하동 정씨 집성촌인 청주시 청원구 옥산면 덕촌리 반곡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찍이 이승만, 박용만과 함께 독립운동계의`3만'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선생은 상동 청년회에서 을사조약 반대투쟁을 주도하다 실패하자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해서는 국민의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이 최선책이라 결의하고 고향인 이곳 덕촌으로 낙향하였다. 당시 하동정씨 집안 어른들에게 교육만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음을 역설하면서 문중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06년 민족학교인 덕신학교(현 옥산초의 모태)가 설립되었다.

덕신학교는 지역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계몽 및 구한말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근대의식을 불어넣는 일을 담당하였다. 이때 경제력을 가진 지방 유지와 선각자들이 민족교육에 함께 참여하였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덕신학교는 설립 110년 만인 2016년에 덕신학교가 복원되었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던 대청마루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덕신학교 전통문화 체험 교실을 열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덕신학교는 주변 마을의 청년들을 모아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영향으로 3·1운동 때 덕촌마을 주민들도 일심단결하여 독립만세 운동을 외쳤다. 당시에 덕촌마을의 주민들 상당수가 왜경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나 옥중에서도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이를 되새기는 3·1절 기념행사가 1979년부터 덕촌교회와 덕촌신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덕촌 청년회가 마을 전체 행사로 이를 계승, 발전시켰다. 현재는 `덕촌을 사모하는 모임'이 행사를 주관하여 윷놀이, 단체줄넘기 등을 즐기는 마을 축제로 발전했다.

정순만 선생은 이상설 선생과 함께 민족학교인 서전서숙을 설립하였으며, 안중근의사 의거 계획을 주도했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사회 지도자로 민족운동을 한 독립투사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정순만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1995년에는 아들 정양필과 자부 이화숙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고향 마을인 청주시 옥산면 덕촌리 독립운동가 마을에 가서 덕신학교도 둘러보고 정순만 독립운동가의 뜻과 정신을 기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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