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의심하라
무지를 의심하라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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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무지를 의심하며 자각하라.” “깨달음이 없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열변하는 김 교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비가 쏟아진다. 나무가 젖고 꽃이 젖고 대지가 젖는다. 그러나 꽃과 나무는 비를 잎과 꽃에 잠시 잠깐 머물다 흘러내릴 뿐, 젖지 않는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자리마다 말쑥하다. 눈을 닦고 귀를 쫑긋 세워본다. `아! 비가 내린다.'비와 나, 묵언의 대화는 가슴으로 흐른다. 눈에 드러난 풍경이 온전히 내게 다가오는 날이다.

삶의 모든 것이 주춤거리는 요즘, 내게 주어진 환경을 돌아본다. 평범한 일상이 예기치 않은 코로나로 생활에 제약을 받으며 당황스럽기는 너나 할 것이 마찬가지다. 어디에다 불평도 불만도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래도 지금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는 나은 환경이다.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딸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월부터 국경을 봉쇄해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평소에도 치안이 별로 좋지 않아 조심스러운 나라에 상점 폐쇄와 특수직 외에는 외출을 제한하니 혼자 생활하는 딸의 생활이 어떤지 지레짐작이 간다. 4월에 오기로 한 휴가는 기약이 없다. 미혼이라 혼자 생활하느라 힘도 들지만, 한국이 많이 그리운 모양이다. 낯선 나라에 혼자 생활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겨우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며 현재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한다. 우리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야 지난날이 얼마나 소중했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주어진 내 삶에 늘 감사하며 살지만, 지금껏 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잘 안다. 누구도 개인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달라질 뿐이다. 주위를 볼 때, 정말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가 사라지고 공정한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계절이 있고 환경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에서 뭐가 부족해서 우리는 욕심을 부릴까?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듯 잠시 왔다가는 인생, 이참에 오염된 뇌와 마음을 장대비로 구석구석 깨끗이 씻을 수는 없을까?

기성세대들은 나름 내 목소리 내며 좋은 환경에서 잘 살아왔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부정부패가 내재했어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드러나지 않았다. 어느 사이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보다 탁한 사람들이 많아져 우리 사회가 혼란기를 맞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정의롭다고 학습해온 것들이 길을 잃고 절벽에 서 있는 것 또한 아니겠지? 어린 시절 산골에서 몹시 가난하게 살았지만 절대로 남을 아프게 하거나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다. 어려울수록 잘 견디면 하늘이 도와준다고 믿고 눈물과 쓴맛을 삼키며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실속 없이 살지만, 무엇이든 내게 주어지는 일이 있으면 좌절하지 않고 도전했다. 목적도 없이 열심히 살다가 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답이 없는 세상, 그래도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엄마는 내게 늘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한다.

김 교수가 열변하는 소크라테스의 숙고한 삶과 크세노폰의 활동적인 삶을 통해 자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실력의 한계와 시간에 쫓기며 설익은 글을 내보냈다. 용기도 실력이라고 자위하며 욕심을 부려봤다. 무한의 의미를 담은 숙고한 삶을 자각하며 잠시 무지를 의심해본다. 얼마간 쉬면서 성숙한 글로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자숙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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