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존
아름다운 공존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0.06.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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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바람이 싱그럽다. 밭 끝자락 언덕 나무에서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며 바람결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바람에 나풀거리며 춤을 추던 하얀 꽃잎들이 고추 두둑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검은색 비닐 위에 하얀 꽃잎이라니 흑백대비가 극명한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기능을 작동시키려다 멈칫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다. 꽃을 바라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은 스스로 늙어가고 있다는 표시를 내는 거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날마다 늙어 가는 표시를 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휴대전화 속의 사진 폴더를 가득 채운 꽃과 식물 사진들이 그것을 보란 듯이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아무렴 어떠하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간다 한들 꽃이 피고 지며 손짓하는 모습들을 그냥 외면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얼마 전에도 친정 뒷골 밭 언덕에서 조팝나무 몇 뿌리를 캐다 전나무와 벚나무 사이에 심었다. 내년 이맘때 하얗게 피어날 꽃들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뛰었다. 몇 년 전 땅을 구입할 때도 농사를 지을 목적이라기보다는 꽃을 심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꿀 생각으로 설??다. 그 설렘으로 억새가 우거지고 바위투성이인 땅을 우여곡절 끝에 밭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내 땅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임야였던 곳을 전으로 형질 변경을 하고 나면 5년 후에나 대지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대지에만 집을 지을 수 있고 정원도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법이 그렇단다.
밭을 만들면서도 농사짓는 일은 애당초 능력도 안 됐지만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푸성귀 조금씩 뜯어 먹을 밭 귀퉁이 한두 뼘이면 충분했다. 동네 이장님께 밭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분을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 기꺼이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분이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계신 분들이다. 첫해 밭 이곳저곳 빈틈없이 씨앗을 심고 약을 뿌리는 그분들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다. 혹시라도 잡초를 죽이려고 뿌리는 제초제에 밭 가장자리 곳곳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이 말라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살피고 또 살폈다. 반면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제초제를 뿌리면서 마음이 불편하셨을 터였다. 혹시라도 꽃과 나무들을 상하게 할까 조심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그분들에게 밭이란 무조건 농작물을 심어 수확해야 하는 터전이고 그게 옳은 일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분들과 달리 시골 태생이면서도 도시생활을 하며 어깨너머로 농사짓는 걸 바라보기만 했던 나에게는 밭이란 텃밭도 되었다가 때론 정원도 되어주고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받을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는 곳이다.
그분들이 밭에 앉아 일하는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밭과 한몸인 듯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두려웠다. 혹시라도 밭 가장자리인 내 쉼터마저 점령당하게 될까 봐 그분들이 밭에 계시면 꽃을 살피고 사진을 찍는 일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검은색 비닐 위에 내려앉은 하얀 꽃잎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아름다울 수 있지 않던가. 밭과 한몸인 듯 호미를 들고 씨앗을 심는 그분들과 꽃과 나무를 심으려 호미를 드는 내 모습이 아름다운 공존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밭 가장자리 이곳저곳에 꽃과 나무를 심을 자리를 물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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