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철학적 상상력
말년의 철학적 상상력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6.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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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철학은 논리적이다. 한 단계의 비약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논리이니 철학은 생각이 전개되는 과정을 엄밀하고 정교하게 따진다. 한 생각(p)에서 다른 생각(q)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를 악착같이 따지다 보니 생각에 융통성이 많지가 않다.

철학자 흄은 당구를 즐겼다. 당구는 하얀 공으로 빨간 공을 친다. 빨간 공을 움직이려면 하얀 공을 치는 것이 당연하다. 곧 빨간 공이 움직이는 건 하얀 공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얀 공과의 충돌이 원인이 되어 빨간 공이 움직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흄은 한 생각(하얀 공의 충돌)이 다른 생각(빨간 공의 움직임)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가를 묻는다. 하얀 공과 충돌한다고 해서 빨간 공이 움직이는 걸까? 빨간 공이 움직이는 건 당구대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큐 미스가 나서 하얀 공 대신에 빨간 공을 건드렸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따지면 한 생각(원인)에서 다른 생각(결과)으로 넘어가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게 된다.

흄은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 머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에 이런 원칙을 적용한다. 곧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는 세상사,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는 마음의 움직임에 필연적인 이유나 원인을 갖다 대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움직이는 인과법칙은 필연적일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엄밀하고 정확하기는 하지만 생각에 여유가 없으니 인생살이가 팍팍해진다.

성냥불을 켜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흄은 묻는다. 성냥을 성냥갑 종이에 마찰하면 불이 일어나는 게 당연한 거야? 아닐 수도 있잖아. 날이 너무 더워서 자연발화된 것일 수도 있고 마찰을 해도 종이가 젖어서 불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행복할까?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흄은 철학을 할 때는 인생이 불행하지만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담소를 즐길 때 비로소 삶의 참맛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철학적 논리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실 논리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걸 입증하는 과정(just-ification)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사는 건 너무 피곤하다. 나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까? 다른 사람도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입증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끼리 맞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엄격한 법리논쟁을 포함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철학하는 사람도 나이가 드니까 논리가 피곤하다. 그래서 종종 비논리적 상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중에 하나를 택해서 죽으면 다른 걸로 태어난다고 해보자. 내가 죽으면 다른 걸로 태어난다고 하면 나는 태어나기 전에도 무언가로 살았다는 말이 가능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무언가로 살았고 죽은 후에도 무언가로 살아갈 `그놈'은 뭐지? 내 몸, 내 생각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아가지게 된 것들이다. `그놈'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죽은 후에도 죽지 않는다. 태어난 건 지금의 나고 죽는 것도 지금의 나이다. 그런데 그놈은 나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가 죽는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대체 그놈이 누구지? 그놈은 지금 나의 몸이나 생각 가운데 있는 걸까? 나의 몸이나 생각은 태어난 것인데 `그놈'은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의 몸이나 생각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면서 내 탄생 이전에도 내가 죽은 후에도 있을 `그놈'은 뭘까? 철학적 논리를 벗어던지고 상상력을 발동해보면 내 인생에서 풀어야 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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