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부석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6.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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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살다 보면 낯선 게 있기 마련이다. 부석사는 익숙한 절이지만 그 이름은 절 이름으로 낯설다. 물 위에 떠도ˆf 돌이라는 의미의 부석(浮夕)을 절 이름으로 삼은 내막은 전하는 전설 외에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덧없이 떠돌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의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조선(朝鮮)의 방랑 시인 김삿갓은 이곳에 잠시 들렀다 간 또 하나의 부석(浮夕)이었다.


부석사(浮石寺)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이곳 못 오다가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흰머리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네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강산은 그림처럼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초처럼 낮밤으로 물 위에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되어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빼어난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히도 젊은 사내를 늙게 했구나

시인이 생존했던 200여년 전에도 부석사는 널리 알려진 명소였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시인이었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이곳은 들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다 희어진 노인이 돼서야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노래한 것은 부석사 자체는 아니었다. 대신 그 주변 풍광과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동남으로 뻗은 강과 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부석사라는 절 이름으로 말미암았을 것이지만, 시인의 뇌리에는 떠돎(浮)이라는 글자가 계속하여 맴돌았다. 하늘과 땅도 마치 물 위를 떠도는 부평초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인이 겪은 세상의 모든 일도 재빠르게 내닫는 말에 올려져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느껴졌다. 시인 자신도 한 마리 오리가 되어 우주를 떠돈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사람이 백 년을 산다 한들 부석사 같은 뛰어난 경관을 몇 번 볼 수 없을 것인데 세월은 무정하게도 젊었던 사내를 늙게 했노라고 시인은 탄식하는 것으로 노래를 끝맺는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마주하게 되면, 감탄을 연발하며 즐거움에 젖곤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인생무상을 진하게 느끼기도 한다. 더구나 부석사처럼 명칭에 덧없음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삶의 덧없음을 느끼는 것은 결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욕망이나 속박으로부터 사람을 치유해 주는 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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