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 승인 2020.06.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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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봄이 물어다주는 햇살 좋은 요즘, 부는 바람에 초록색 머리칼을 한 나뭇잎들이 날린다. 싱싱한 날씨와 상관없이 전염병이 쉽게 잦아들지 않으면서 조금씩 답답함을 느낄 때 기다리던 책이 도착했다. 열세 살의 작가 전이수의 신작 그림 에세이 `소중한 사람에게'다. 아이의 순진한, 혹은 암자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마친 동자승처럼 투명하고 깊은 그의 시선을 훔쳐보며 느끼는 경외심은 내장 깊은 곳에 있는 삶의 찌꺼기를 배설하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보고 듣고 체험하고 만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멜로디 같은 그림과 글은 많은 생각을 일어서게 한다.

작가가 살고 있는 제주도의 풍경과 집, 산책하며 느끼는 감상들, 방사형의 여러 관계 속에, 현재의 시공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사색을 담아 씨앗으로 가슴에 심는다. 특히 작가는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엄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읽으며 주 양육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또 나는 어떤 양육자였나, 성찰하게 한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답게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를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고, 자유는 내 심장을 따라 살아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말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돌아다닐 것 같다. 얼마 전, 충북대 독서토론 수업 공통과제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를 물었던 적이 있다. 학생 대부분이 이수 작가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했다. 내가 바랐던 대답은 좀 치기어리고 실수하면서 익히는 자유, 민망한 모습도 보이고 무너지는 자신을 보는 자유, 금기시되던 것들을 하나씩 깨뜨리며 방종과 자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런 자유로움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동안 제도권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한번 쯤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붕 위에서 글을 쓰고, 자동차위에서도 노는 자유로운 영혼의 이수 작가도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존엄을 존중하는 마음은 다 같음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더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고 통찰해야 존재를 존재 자체로서 환대할까 생각해 본다. 노키즈 존이 생기고, 여성과 어린이의 학대는 끊이지 않고 약자를 향한 불합리한 분노는 제쳐놓고라도 작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렴치한이 되는 지금의 사회모습에 열세 살 작가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섬세한 균형과 조화로움으로, 엄마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처럼 작가는 우리 모두 둘인 듯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간다고 단단하게 말하고 있다.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이 가당키나 한가. 초등학교 떼도 벗지 못했을 아이의 영혼에서 생을 아우르는 통찰의 말들이 쏟아지다니 말이다. 맞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특히 존엄이기에 그러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는 무한경쟁에 붙들려 존재를 망각하고 자신을 경쟁의 도구로 삼는다. 생각이 더 굳어지기 전에, 경쟁에 빠져 있는 줄도 인식하지 못하는 나에게, 늘 이기려고만 하는 나에게, 어두운 구석에서 더 소유하지 못해 우는 나에게, 고립되고 외로운 나에게 따뜻한 손바닥을 보이는 이수 작가는 안식으로 날개를 접은 슬펐던 내 영혼을 위로한다. 작지만 큰 어깨를 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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