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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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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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는 인류 문명에 있어 어떤 역사로 기록될까? 지금 내가, 우리가 겪고 있는 통시적인 현상이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니 갑자기 의미심장해진다. 인간이 추구하는 정신적, 물질적인 삶의 질과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포괄적으로 우리라는 말 속에는 무한의 책임과 의무가 내재한다. 변화무상한 세계 속에 고대에서부터 반복해서 저지르는 인간의 오류를 본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도 미국과 홍콩에서는 시위와 폭동으로 난리다. 사회 전반적으로 아포리아에 맞닥뜨린 현재, 나는, 우리는, 국가는, 이상적인 미래상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코로나19 하나로 전 세계인이 골머리를 치르고 있는지가 벌써 반년이 되었다. 마스크 쓰고 생활하는 것도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도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는 시기에 도출하고 있는 미국의 폭동과 홍콩의 시위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비단 미국과 홍콩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일이다. 황색을 지닌 유색인으로 백색의 유럽인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요즘 나는 환경과 인간관계 개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연령이나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며 가상적 미래 공간에 대한 방향 제시와 향후 설계를 한다.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들이 오간다. 한 분이 미국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에 대부분 수영장이 있다. 김 여사가 손주 보러 미국에 갔다가 창밖을 보니 때마침 백인들이 풀장에서 수영하고 있어 손주를 데리고 갔다. 아이와 같이 물에 들어가서 10분도 안 되어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풀장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김 여사 말로는 백인들 노는 곳에 황인이 들어오니 싫어서 피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백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백인 또한 황인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또한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본다.

과연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걷잡을 수 없는 홍콩의 시위? 사태?를 지켜보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 청년들이 경찰에게 질질 끌려가거나 폭행당하는 이웃 나라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아파하는가? 국가별로 나름대로 역사와 사연이야 있겠지만 무분별한 무력과 폭력이 동반된 강제진압이나 인권유린은 없어야 한다. 홍콩 시민이 시위하면서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영화 `1987'을 많이 본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아픈 과거가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두 번 다시 아픈 과거의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 등 파란만장한 과거의 흔적이 우리 유전자 속에 아직도 뜨겁게 흐르고 있다. 사회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시대, 국내외 정세를 보며 플라톤이 주장하는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철두철미하게 방패막이가 되었던 무력도 코로나19에 의해 무너졌다. 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이 사라진 민주화를 혐오했을까? 이상적인 국가 건설은 무력도 법도 아닌 철학이 살아 있는, 다시 말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 본성, 미토스를 고양해 미지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상계의 그림자 속에 살다가는 우리, 각자 볼륨을 줄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삶이라도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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