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스텔라의 줄무늬블랙페인팅
프랭크스텔라의 줄무늬블랙페인팅
  • 이상애 미술평론가
  • 승인 2020.06.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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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상애 미술평론가
이상애 미술평론가

 

19세기 중반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낭만주의'를 끝으로 모더니즘의 거대서사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미술사는 이전의 것들과 구별 짓기 위해 `현대미술'이라 이름 하게 되는데, 이 경계의 지점에서 이후 이어질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향한 영토확장에 기여한 작가가 바로 프랭크 스텔라이다. 스텔라는 이전까지의 모더니즘의 서사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더 이상 화가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빛, 색, 공간 등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스텔라는 1959년 뉴욕의 MO MA에서 개최된 `16인의 미국미술가들'전에서 줄무늬블랙페인팅을 선보이며 23살의 나이에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의 줄무늬블랙페인팅은 캔버스의 밝은 배경이 붓질이 지나가지 않은 가느다란 줄무늬 형태로 드러날 뿐 화면 전체가 흑백의 모노크롬으로 뒤덮인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재현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고 이전의 회화적 질서가 소멸된 객관적·이지적 구조인 평면과 테두리라는 두 요소만 남긴다. 또한 캔버스의 외관 형태와 화면상의 묘사된 패턴을 일치시키는 이른바 쉐이프트캔버스 개념을 창출하여 모더니스트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유화물감 대신 에나멜페인트가 올라간 화면, 사라진 작가의 흔적, 그리고 반복적인 시각적 패턴 등에 의해 그림이 하나의 오브제로 자리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의 그림에 대해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고 한 바 있다. 말인즉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선문답 같은 이 말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그림을 감상할 때 의례적으로 그 안에서 뭔가 의미하는 바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작품이란 뭔가 의미심장한 것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그림을 마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텔라는 바로 이러한 예술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의 말은 그 안에서 뭔가를 찾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의미를 지니고 `보이는 대로 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나 상징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도형이나 기호 혹은 어떤 표지판 같은 그의 작품 앞에서 관람자들은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회화는 그저 하나의 오브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블랙페인팅은 `큐비즘의 논리적 발전'으로서 르네상스 이후의 이젤페인팅의 일루전과 추상표현적인 일루저니즘을 완전히 제거하고 미술작품이 어떤 의미나 상징을 담고 있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스텔라 이후 `회화는 하나의 사물'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면서 그림에서 환영을 제거하고 단순히 오브제로서의 그림 자체가 지니는 물리적 현존성을 강조하는 회화형식인 미니멀리즘이 발전하게 된다. 이는 새로운 공간 암시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결국 스텔라는 추상회화에 공간의 드라마를 끌어들이고 깊이를 부여하는 현대미술의 탈장르화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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