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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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0.06.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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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왼손에 의지해 살아간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오른손잡이로 오십 평생을 살아오다가 왼손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왼손을 제법 쓸 줄 안다는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날의 사건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책망을 하기도 하고 신경이 다치지 않고 손가락이 움직이게 된 걸 다행이라 위로도 했다.

지난 5월 5일, 기분 좋게 낮잠을 자려다가 세탁기 돌려놓은 게 생각났다. 베란다로 가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청소를 하고 맨발로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가까운 응급실로 가서 X-ray를 찍고 응급처치를 했다. 손목뼈가 부러져서 수술해야 했다.

다음 날 청주로 향했다. 바로 입원해서 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검사를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병원생활을 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병원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식 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치수도 제대로 없는 낡은 환자복에 침대도 수동으로 돌려야 했다. 공동병실에 딸린 화장실도 없었다. 요즘 병원들이 환자들을 끌어들이려고 홍보에 전념하고, 외관과 편의시설에 지나치게 편중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시설에 대한 불편함은 있었지만, 병원을 잘 선택했다는 믿음이 갔다. 정확한 진단과 후유증 없는 수술에 대한 신뢰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후 이틀 동안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했다. 수지접합수술로 유명한 병원인데 주치의 선생님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반나절씩 하는 진료 외에는 수술이 있어서 바쁘셨다.

병원에 있으면서 같은 병실에 있는 분들과 현대식 시설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얘기했다. 그런 불만 끝에 결론은 늘 `그래도 수술은 잘해요.'로 끝났다. 수술에 대한 신뢰성만 아니면 결코 이 병원을 다시는 찾지 않을 거라는 합일점에 도달했다.

5월 초 황금연휴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관련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방역체계에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일상생활로의 복귀에 구멍이 뚫린 시점에서 `기본수칙'을 잘 지키자는 방역 당국의 당부가 이어졌다.

처음 코로나19에 대한 기본 수칙이 `손씻기'와 `마스크'의 올바른 착용이었다. 정부에서는 아이디어를 내서 전 세계를 강타한 핑크퐁 `아기상어'노래를 개사한 `아기 상어와 손 씻어요'를 국립박물관 화장실에 설치했다고 한다. 손 씻기 30초는 짧은 시간이 아닌데 노래와 연결해서 한다면 지키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시점에서 기본수칙을 잘 지키는 것은 집을 지을 때의 `주춧돌'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춧돌이 무너지면 그 위에 아무리 튼튼하고 화려하게 쌓아 올려도 소용이 없다. 현대적 시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병원의 주춧돌로 의료행위의 실력을 키워서 인정받은 H 병원처럼 기본이 튼실한 경우는 많다. 병원에 있으면서 내 삶의 주춧돌은 얼마나 잘 버티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방과 후 돌봄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느슨해진 마음의 고삐를 다잡으며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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