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의 생존기(1)
새봄이의 생존기(1)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05.31 1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고향 집으로 돌아와 맞은 첫 방문객은 삼색 고양이다. 초대한 것도 아닌데 제 발로 찾아왔다. 보자마자 발라당 누워 애교를 떤다. 고양이를 키워 보지 않았지만, 집고양이로 살아 사람의 손을 탄 것이 분명했다. `새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사해 봄에 만난 고양이라는 뜻이다. 그날로 새봄이는 우리 집에 눌러앉아 `마당 고양이'로 살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이번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 녀석은 새봄이와 달리 애교는 고사하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사료 3포대가 없어진 후에야 쓰다듬을 허락 했다. `가을이'는 녀석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이렇게 고양이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새봄이는 암컷, 가을이는 수컷이다. 함께 살다 보니 자연의 이치에 따라 새봄이가 새끼를 뱄다. 배가 불러오는 것이 안쓰러워 먹을 것을 평소보다 더 많이 주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새봄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고 대문 앞에서 새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른 특이하고 아픔이 가득한 소리였다. 이상하다? 왜 저런 울음소리를 낼까? 다음 날에 궁금증이 풀렸다. 새봄이가 새끼를 낳으러 간 곳이 옆집 창고였는데 하필이면 같은 날에 그 집에 사시던 분이 투병 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에게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좋을 리 없었다. 새봄이는 그 집에서 쫓겨났다. 위험을 느끼면 새끼들을 안전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한다. 새끼들을 입으로 물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도중 소나기를 맞아 새끼들은 모두 잃고 만 것이다. 새끼를 떠나보낸 슬픔 때문에 그렇게 특이한 울음소리로 운 것이다.

그러나 슬픔은 잠깐이다. 새봄이는 또 임신을 했다. 가을이와의 사랑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봄이 배가 불러오는 중간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 가을이가 아랫집에 사는 젊은 암컷 고양이 늦봄이(늦은 봄에 만나서)와 눈이 맞은 것이다. 둘만 살던 집에 늦봄이를 데리고 오고 싶어 안달이 난 가을이의 다양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질투심과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 날아오르는 새도 잡는 사냥꾼 기질을 지닌 새봄이의 공격으로 가을이의 새 장가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출산 날이 다가오자 새봄이가 또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생활하던 곳에서는 새끼를 낳지 않는가 보다. 일주일 정도 지나 옆 옆집 보일러 창고에서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물건 찾으러 보일러 창고에 들어간 친구가 발견한 것이다. 며칠 후 장작을 쌓아 놓은 우리 집 뒤뜰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새봄이가 새끼들을 모두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사람 소리에 후다닥 숨는 녀석들의 꼬리가 보였다. 집사람과 창문 뒤에 몰래 숨어 보니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네 마리였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매일 고양이를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처음의 경계심이 무뎌지고 우리를 보아도 얼굴을 내미는 새끼 고양이들의 매력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이들과 재미있게 지낼 앞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뒤뜰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고양이들을 보러 가니 이게 웬일인가? 흔적도 없이 고양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허망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잃은 느낌이었다. 집에 설치해 놓은 CCTV 화면을 돌려 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새벽 5시 30분 새봄이는 앞에서 가을이는 뒤에서 새끼들을 밀며 우리 집을 탈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기 싫어하는 새끼들의 목을 물고 떠나는 장면이 생생히 찍혀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