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5.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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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철학을 하면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가르치고 또 스스로도 많이 하고 살았다.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태어난다는 건 생긴다는 건데 아무것도 없는 데서 어떻게 생겨? 죽는다는 건 없어진다는 건데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로 변화하는 거지. 탄생은 없다가 있게 되는 건 데 없다는 걸 생각하는 건 불가능해. 따라서 생겨난다는 건 불가능해. 소멸은 있다가 없게 되는 것이니 탄생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죽는 게 불가능하다.

세상에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산다. 진보는 진보의 잣대에 맞춰서 보수는 보수의 이념에 맞춰서 보고 판단하게 되어 있다. 각자가 믿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진리라는 말이다. 사람마다 다 판단의 주체로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거짓이란 없다. 사실 스스로의 생각이나 삶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진리 권리를 향유하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이 되나?

세상에 서로 대립되는(모순되는) 생각(말)은 없다. 무언가 생각(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있어야(is) 한다. 있지 않은(is not) 허공을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라고 말(생각)할 수 있지 ~이지 않다고 말(생각)할 수는 없다. 무언가 말을 하는 한 그 사람은 `~이야(is)'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나 말이 모순(대립)된다는 건 ~인 것과 ~이 아닌 것이 부딪힌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지 않다(is not)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곧 말이나 생각을 하는 한에 있어서는 다 ~인 것의 범위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인 것과 ~이지 않은 것 사이의 대립이나 모순은 불가능하다. 말이 되나?

모든 것에는 대립적인 술어를 매기거나 논증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 무슨 얘기지? `풍년은 (무조건) 좋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가 발설하느냐에 따라서 풍년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풍년은 농부에게는 좋지 않다. 배추농사가 풍년이 들면 배춧값이 폭락해서 수확하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농부들이 밭을 갈아엎는다. 그렇지만 풍년은 소비자에게는 좋다. 배추 농사가 풍년이 들면 소비자는 싼 값에 김장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모든 것에는 대립적인 서술이 가능하다.

대립적인 논증은 어떻게 가능한가? 누가 배우는가? 아는 사람이 배운다. 글을 읽거나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배우지 글을 읽을지 모르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배울 수 없다.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배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다. 곧 몰라야 배우는 것이지 아는 사람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뭔가가 이상한데? 그렇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세상에 모순이나 대립이 불가능하다는 논증도 있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립적인 서술이나 논증이 가능하다는 논증도 있다. 둘 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 아냐? 맞다. 그럼 뭐가 맞는 이야기야? 다 맞는 이야기지.

철학에 입문하면 이렇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사람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야 머리에 심겨진 굳은 편견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학생들이 알아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도록 놔둔다. 무책임한 거 아닌가? 그렇다. 무책임하다. 무질서(chaos)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선생은 무책임할 필요가 있다. 쓸데없는 친절함은 사람의 생각을 수동적이게끔 한다. 특히 사람의 마음이나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학생에게 맡겨놓는 것이 좋다. 선생은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학생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을 뿐이다. 이게 말이 되는 생각일까?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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