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5.2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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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하늘을 본다. 까만 하늘 위로 바람이 구름을 밀고 간다. 구름 속에서 언제부터 지켜 섰을지 모를 한 사내가 나를 내려다본다. 부끄럼이 많았다. 언제나 자신의 거울을 닦고 닦았을 사내다. 작은 바람에도 죽어가는 것을 위해 기도했을 그다.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 그때부터였을까.

몇 년 전, 여름이 한창이던 6월의 끝 무렵 그가 나고 자란 곳을 다녀왔었다. 중국 북쪽지역으로 연변자치주에 속해있는 용정이었다. 모임의 회원도 아니면서 우연찮게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주목적지는 백두산이었다. 하지만 백두산 관광보다 여행일정표에 `윤동주가 다니던 대성중학교 관광'이 포함되었다는 말에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했다.

대성중학교를 찾은 그날, 한여름임에도 그곳은 바람이 많이 불어댔다. 태양은 우리들의 정수리 위를 바짝 따라다니고 있었다. 일행은 벌써 계단을 다 올라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하지만 나는 층계 하나하나를 천천히 올라가느라 일행들보다 뒤처져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계단에 박힌 대리석의 문양도 유심히 살폈다. 드디어 이층이다.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교실은 텅 비어 있다. 어디쯤이었을까. 어느새 내 눈은 교실 곳곳을 훑고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음에도 이상하게도 훈기가 느껴진다.

발길을 돌려 애국지사들의 활동이 담겨 있는 옆 전시관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용정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사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조국을 등지고 떠나온 이들의 새로운 꿈들이 꿈틀대던 곳, 이곳에서 그들은 서로의 시린 가슴을 보듬어 살아갔을 터이다. 그 속에서 윤동주의 일가는 조국을 그리워하는 이곳 사람들과 더불어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윤동주를 두고 민족 저항 시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시를 보면 저항 시인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여리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항시의 대표 시인인 이육사의 거친 남성미도, 한용운님의 단호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여린 마음 탓에 조국을 위해 결연히 나서지 못하는 나약함을 온통 시에다 뿌려 놓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가슴이 아프고 무겁다.

구름이 별들을 밀어낸 하늘은 캄캄하기만 하다. 오늘도 나는 그의 시를 앞에 놓고 앉았다. 읽을수록 슬프지만, 시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그래서일까. 약하지만, 그토록 아프게 시를 쓴 이유가. 그토록 연약한 가슴도 시를 쓰는 순간은 의연함으로 벅차올라 조국을 그리는 시가 되었을까.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이, 내면을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윤동주의 시는 마음으로 보아야 느낄 수 있다. 부끄러움은 조국에 대한 그의 강인한 사랑의 표현이다. 읽을수록 아프고, 아플수록 그의 시가 가슴에 또렷이 들어와 박힌다.

어느새 사방이 고요하기만 하다. 바람도 지쳤을까. 작은 생명의 소리가 고요함 속에 아름답게 들려온다. 바람을 사랑하고, 작은 생명을 사랑했던 사람. 어쩌면 예전의 별이었을지도 모를 사내가 까만 하늘에서 웃고 있는 듯,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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