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5월의 노래, 또 다시 봄
끝나지 않은 5월의 노래, 또 다시 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26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누구에게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살아온 세월이었을 터이고, 또 누구에게는 크게 기억할 일이 없는 그럭저럭 지내 온 시절이었으리라.

그 해 5월18일부터 열흘 동안 그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을까?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시퍼렇게 핏발이 선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4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의 무관심 사이로 다시 5월27일, 그 광주의 끝 날이 붉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그 꽃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무엇을 들었니 딸들아/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 묻기 전까지// <중략>/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 묻기 전까지…<후략>」

그 해 그 날 이후 40년. 청년은 늙었어도 차마 살 떨리던 기억 지울 수 없는데, 정태춘의 노래 <5.18>은 곡조마저 직설적이어서 더 서럽다. 사방으로 사람의 몸통에서 빠져나온 피가 튀고, 국군이 겨누는 총구에 무참하게 스러져 간 뒤, 숨소리조차 두려운 침묵. 공포는 목을 잠기게 하고 분노는 가슴 깊은 곳에 고스란히 담겨 열흘 동안 꿈꾸었던 대동세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5월27일. 그 후로 붉은 꽃은 4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도저히 아름다울 수 없으리니.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봉황산 고개 너머/ 끝없는 나그네길.../ 이제 쉴 곳을 찾으리라// 서산에 해 뉘엿뉘엿/ 갈 길을 재촉하네// 저 눈물의 언덕 너머/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지나온 오솔길에/ 갈꽃이 한창인데/ 갈꽃 잎 사이마다 님의 얼굴 맺혀 있네// 길 잃은 철새처럼 방황의 길목에서/ 뒤처진 내 영혼 저 하늘 친구 삼네/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 초저녁별이 되리// 내 영혼 쉴 때까지 나 소원 노래하리.」

그 이듬해, 곽성삼이라는 가수는 <귀향>을 노래한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길. 보고 싶어도 그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긴 세월을 우리는 곽성삼의 노랫말처럼 하늘을 친구 삼을 수도, 초저녁별이 되어 사랑하는 혈육들을 그리워할 수도 없는 절망의 40년을 보냈다.

진실은 여전히 비굴하게 묻혀 있고 절망의 5월 광주 마지막 날은 40년을 속절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님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듣는 5월, 눈물은 어찌 메마를 수 있겠는가. 그 모진 기억 서럽게 남아 기꺼이 뒤를 따르는 `산자'의 몫은 학살의 책임자를 밝혀내고 나서야 비로소 화해를, 그리고 울분의 용서나마 가능하지 않겠는가.

「사람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40년이 흘렀어도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여전히 뜨겁다. 다만 그 뜨거움과 붉어지는 눈시울이 해마다 5월에만 되풀이될 뿐, 아직 우리는 감춰진 진실을 찾지 못하고, 그리하여 위로와 용서는 더욱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관심의 역사를 살고 있다.

“무관심이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해롭고 불결한 것인, 권력과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는 바로 그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비극적인 증인이다.” 프랑스 작가 비비안느 포레스테가 <경제적 공포>를 통해 한 말은 지금 더 절실하다.

40년이 흘러 2020년 5월, 우리는 `덤 달'이라는 4월 윤달을 보내고 있다. `또다시 봄'이 지나면 진실과 화해, 사죄와 용서가 찬란한 5월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멈출 수 없는 `산 자여 따르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