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며 살기
따지며 살기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 승인 2020.05.24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얼마 전 북한 김정은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난무했다. 처음엔 설마 했는데 유튜브에 북한 방송처럼 꾸며서 사망 소식을 전하거나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등이 사망설을 뒷받침할 말을 쏟아내는 통에 나도 흔들렸다.

때아닌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김정은이 북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며 언론을 물들이던 가짜뉴스는 거품이 빠졌다. 하마터면 나도 낚일 뻔했다. 이렇듯이 가짜뉴스는 사람의 정신을 흔들어 근거 없는 것을 믿게 하고 불안을 키워 어딘가 매달리게 한다.

영미 평단과 독자들의 극찬을 받으며 그림책의 신성으로 떠오른 에밀리 하워스부스의 데뷔작 `어둠을 금지한 임금님'은 이런 가짜뉴스와 권력의 여론조작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워터스톤스 어린이 책상 우수상을 비롯해 클라우스 플뤼게상,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후보작에 오르는 등 뜨거운 반응이다. 이쯤 되니 내용도 궁금해진다.

어릴 적부터 어둠을 무서워한 왕자는 임금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어둠을 금지하라는 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한다. 어둠은 무섭고 지루하고 놀 수도 없다고 한다. 또한, 어둠은 돈을 훔쳐가고, 장난감과 간식도 빼앗아간다고 신문 1면을 장식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둠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지만, 갑자기 어둠이 아주 나쁜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을 기다린 임금은 곧바로 어둠 금지령을 내리고 인공 태양을 궁전 꼭대기에 설치한다. 사람들은 커튼을 치워버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어둠 방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집집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내내 창이 환히 밝혀졌다. 어둠이 없어지니까 밤새 놀기 좋고 날이 새도록 축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둠을 되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불을 끄면 단속반이 찾아와 벌금을 물렸다. 백성이 궁전으로 와 시위를 하자 신하들은 백성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성대한 `어둠 금지 불꽃 대축제'를 계획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신하들의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사람들은 속닥속닥 일을 꾸미기로 했다. 축제 당일 폭죽을 쏘아 올렸지만, 하늘이 환해서 불꽃놀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집에 불을 끄기 시작했다. 옆집에 옆집, 이웃 거리와 다음 이웃 거리도 불을 껐다.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경비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몇몇 사람이 성벽으로 올라가서 인공 태양의 전원을 꺼버렸다.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잘못된 허위정보와 기사, 편파적인 언론 보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부당함에 저항하는 용기에 대해 잘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임금이 어둠을 무서워한다고 어둠을 없애겠다는 졸렬함, 그것에 동조하는 신하들, 헛소문을 퍼트리며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플레이, 생각 없이 복종하는 어둠 단속반과 경비대는 지금 우리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 오히려 잘못됨을 인식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몇몇 시민의 빼앗긴 어둠을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준다.

출처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뉴스와 정보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인신공격적인 가짜뉴스나, 흔하게는 근거 없는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심해지면 인포데믹(infodemic/ 정보 감염증))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사회 혼란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제 좀 피곤하게 살자. 좋은 건 왜 좋은지, 지금까지 좋은 건 정말 좋았던 건지 이런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아야만 사는 동안 속았다는 기분에서 벗어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