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신록 예찬
5월의 신록 예찬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0.05.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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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明朗)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驚異)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陰)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香氣)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貧寒)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期待)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瞬間)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의「이양하수필집」에 실린 `신록예찬' 중 일부 글입니다. 연두와 초록빛이 우거진 이맘때쯤 자주 인용되는 불후의 명작이죠. 사춘기의 중학교 시절 이양하의 `신록예찬'과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그 나이를 늘 설레게 하며 꿈꾸는 시절로 만들었습니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90년대의 감성은 사실 지금보다 더 빛났을 정도입니다. 당시의 아날로그 감성은 지금의 디지털 감성보다는 덜 세련되었을지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또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행복을 느끼도록 일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소만(小滿)이 지나고 있습니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가득 차서 이때부터 여름을 느낀다고 합니다. 신록이 더 짙어지기 전에 시골집 뒤편 소나무숲의 오솔길을 가야 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물오른 신록을 찾아 종종 들르는 나름 비밀의 숲길입니다. 비가 오고 난 후 이틀 정도가 지나 찾아가면 맑은 소나무향이 더 좋고 오솔길 옆으로 올라오는 귀한 생명들을 보기가 좋습니다. 그 주인공은 금난초와 은난초입니다.

소나무숲의 반그늘을 좋아하는 이 자생란은 노란색 꽃이 피어 금난초, 흰색 꽃이 피어 은난초라고 부릅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중남부 지방의 인적이 드문 깨끗한 숲에 자생하는데, 희귀식물은 아니라도 점차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 비밀의 숲길에서도 전보다는 군락이 많이 줄어서 발견하는 것이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그 보물을 찾았을 때 생명의 경이로움이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입니다. 이번에 찾은 열 개의 보물 중에 단 한 개만이 금난초였습니다. 은보다 금이 확실히 더 귀한 것은 맞나 봅니다. 그래도 금난초와 은난초를 모두 만났으니 이 행복감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겁니다.

분묘를 새롭게 조성한다고, 또 은퇴 후 재미삼아 가족공원을 가꾸겠다고 소나무숲의 5분의 1을 싹둑 도려내었습니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청주시내로 진입이 좋은 구 청원지역에는 원래 주인이었던 힘없는 생명들에는 묻지 않고 전원주택을 짓느라 산을 잘라내는 등의 개발행위들이 난무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 땅 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때가 되면 신록을 겸손히 즐기고 이 땅 위의 모든 생명에 감탄하는 것이 인생 예찬이 아닐까요.

/변호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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