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운동과 권력, 그리고 자본
시민사회운동과 권력, 그리고 자본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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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엉뚱한 혼란에 빠지고 있다.

1930년대 제국주의 일본의 중국침략 이후 시작된 만행이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역사적 부끄러움은 이 혼란의 흐름에서 실종되고 있다.

1991년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치욕의 기억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증언했던 피해여성의 피를 토하는 절규 역시 잇따라 불거지는 갖가지 의혹에 파묻혀 조금도 존중되지 않는다.

반민특위의 와해와 친일세력 청산을 이루지 못해 한이 맺힌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이 부끄럽다고 새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부가 하지 못했던 일을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며,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에서 만난 암초의 뿌리가 의외로 깊게 드리워져 있음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 인권 유린에 대한 집단화된 분노는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결합해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일본은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고 민간업자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다음 해 8월 14일 고 김학순할머니가 정대협을 통해 실명으로 잔인한 실상을 증언했고, 지금까지 1,400회가 넘도록 수요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기부금 사용처 논란에 이어 쉼터 매입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은 2016년 박근혜 정권시절 만들어진 정의기억재단과 정대협을 아우르면서 2018년 7월 생긴 민간 차원의 조직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활동의 연보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5월 7일 피해자 이용수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에 대한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니더라도)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부패적 징후와 비도덕성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운동 전체의 건전성과 진정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한 믿음이 커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시민사회운동이 시민의 자발적 동력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감시도 좋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가상하지만, 결국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 자체가 관성적 권력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데 있다. 건강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상징성이 권력이 되고, 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교조적 자만심에 휩싸이면서 스스로 엘리트 독재에 빠지는 오류를 자각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시민사회운동을 빌미로, 익명이거나 보통의 시민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울타리를 만들면서 동질적 우호를 통해 그들만의 상징권력이 될 수 있음을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도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얻은 정보의 접근성을 통해 중앙이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정부 지원 및 공모사업, 그리고 각종 프로젝트에서의 유리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시민사회운동의 조직 범주에 속한 개개인의 입장에서 전업성과 전문성, 그리고 일반적인 시민에 대한 대표성이라는, 유지해야 하거나 확보해야 하는 일 사이의 딜레마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때때로 나만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면서 움직이지 않는 사회를 원망할 수도 있고, 먹고 사는 일에 전전긍긍한 나머지 유혹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충만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거나 신분상승의 빠른 통로로 시민사회운동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시작은 결국 정치권의 부름이었고, 단초는 본인의 위상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정치권력을 통해 감히 피해를 대변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무모함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

권력과 자본의 탐욕에 매몰된 시민사회운동은 결국 익명이거나 숨어서 따뜻한 바람을 기다리는 보통의 사람들이 품은 숭고한 인간성을 배반하는 일이니, 이를 받아들이는 정치권 역시 공범이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은 많다. 시민사회운동의 진정한 순수성은 그들이 끝내 지킬 수 있으니, 갈 길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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