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우상(偶像)
행복의 우상(偶像)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05.17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고향으로 돌아온 지 1년이 된다.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혼란스럽지만, 인구가 적은 농촌이라 그런지 다른 지역보다는 조용하다. 봄이 시작되고 농촌의 일상이 바쁘게 돌아간다. 마스크를 쓰고 멀리 떨어져 앉지만, 성당 미사도 참례할 수 있게 되었다. 저녁에는 같은 마을 부부들과 따뜻한 커피 한잔에 담소도 나눈다. 조용한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밤하늘의 별도 쳐다본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이사하고 몇 개월 지나 다용도실 문에 번호키를 달았다. 시공하러 온 사람이 꼼꼼히 일을 마치더니 집 구경을 시켜 달라고 한다. 예쁘게 핀 꽃들과 나무를 돌아보고 뜬금없이 “선생님은 소원을 이루셨네요. 얼마나 행복하세요”라고 한다. “무슨 소원을 이루었는데요?”라고 물으니 자기 평생소원이 시골에 작은 집 짓고 사는 것인데 이것을 이루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소원을 이룬 것이다. 다른 이의 희망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더 나은 미래, 더 성공한 사람만을 뒤쫓고 있다.

예수님 제자 필립보가 예수님께 청한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두고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우상 숭배하고 있다.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가까운 이웃과 동료, 지인들 안에 하느님께서 계신다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도 자신이 꿈꾸는 내일에 우상 하나를 세워 놓고 그것만이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가톨릭 매일미사 5월 중에서).

행복유예증후군이 있다. 행복에 이런저런 조건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것이 충족될 때까지 행복을 뒤로 미루는 현상이다. 집을 사야만, 결혼해야만, 취업해야만, 건강해야만,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충족될 때까지 행복을 뒤로 미룬다. 하지만 원하는 것들이 충족되면 더 큰 조건이 나타나고 행복은 또 뒤로 하염없이 미루어진다.

인간의 모든 욕망과 조건이 행복의 우상이다. 우상을 파괴해야만 참 행복을 만날 수 있다. 물질주의와 소비 지상주의, 미디어의 범람하는 광고는 우리에게 자꾸 우상을 바라보게 한다. 무엇을 가져야만 행복해진다고 부추긴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더 많이 일하라고 한다. 물건과 조건이 주는 행복은 유효기간이 짧다. 끝없는 소비의 욕망을 자극해 더 큰 갈증을 남기고 종국에는 우리를 불행의 낭떠러지로 내몬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행복이다. 행복은 미래와 과거에 살지 않는다. 행복은 오로지 현재에 산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가 불안한 것은 시선이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것은 시선이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 기본이 되는 삶에 감사한 것, 함께하는 것들에 기뻐할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현대 자본주의가 만든 경제와 성장 지상주의의 거대한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 부유한 성장은 좋지만 가난한 성장도 나쁘지 않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은 건강과 행복에 더 유익하다. 코로나19 종결 이후에 더 높은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발전은 멈춰야 한다. 그보다는 모두가 더 행복한 사회를 향해 나가야만 한다. 거대한 한국형 뉴딜 사업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을 단단하게 보호하는 행복형 뉴딜 사업이 더 소중하다. 행복의 우상을 거두어 내자, 일상의 소박한 사건 안에서 무한한 행복 에너지를 만들자. 모두에게 깊은 성찰과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