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태어났을까?
왜 태어났을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5.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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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철학을 공부한 지 40년 가까이 되고 나니 역시 인생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 철학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삶과 죽음을 논해야 진정한 철학이지. 삶을 고민하다 보면 당연히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어 있다. 삶-죽음에 대해 고민하다가 죽음에 관해 글을 하나 썼더니 그게 인연이 돼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죽음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이나 5일장을 치른다. 왜 3일장이나 5일장을 치르는 걸까? 기독교의 내세관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 이유는 없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지만 영혼은 신자와 불신자로 나뉘어 즉각 잠정적인 거처가 정해진다. 그래서 3일이나 5일 정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에서 이에 대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사자의 서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의식체)과 육체가 분리되고 영혼은 죽은 후 3~5일간 육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혼이 다시 육체로 들어가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3~5일장은 혹시 살아날지 모르기 때문에 가지는 유예기간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우리는 3일장이나 5일장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 49재는 왜 지내는 것일까? 49재는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빌기 위해 지내는 의식이다. 망자(亡者)의 영혼(의식체)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데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빌어준다는 말이다. 이는 윤회를 전제로 하는 장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종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지만 대체로 49재를 지내는 이유는 그와 같다는 것이다. 49재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기왕이면 좋은데 태어나라고 빌어주는 의식이다.

그럼 죽은 후 49일 동안은 뭘 한 걸까?

죽은 지 3~5일이 지나면 망자의 영혼은 중간세계(中陰)로 간다. 그 중간 세계에서 7일에 한 번씩 각종 색의 밝은 빛이 다가오면 그 빛 속으로 들어가는 시험을 받는다. 그 빛 속으로 들어가면 7일 후의 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곧 테스트에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테스트에 통과하면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7일 후 다시 테스트를 거쳐야 하고 그 테스트를 일곱 번 받는다. 49일은 7일마다 테스트를 받아서 마지막(일곱 번째) 테스트를 받는 날이고 거기서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이 세상의 자궁 속으로 들어와 태어나게 된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황당한 느낌도 든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49재를 지내는 문헌적 근거를 찾아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그럼 사자의 서에 따르면 테스트에 통과되지 못한 의식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가? 세상에 태어난 자가 승자가 아니라 루저(looser)라는 말인가? 그렇다는 말이다. 왜 태어났냐구? 안 태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어떻게 되지? 죽지.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다. 왜 죽지? 태어났으니까. 환장할 노릇이다. 안 태어나지 못하면 죽어야 하고 죽은 자가 안 태어날 수 없으면 태어나서 또 죽어야 하고.

질문을 바꿔보자.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안 태어나면 된다. 안 태어나려면? 이 질문에 답하려면 `왜 태어나지?'를 물어야 한다. 왜 태어나지? 세상의 밖에 나오려는 힘 때문에 태어나는데 그걸 쇼펜하우어는 삶에의 맹목적 의지라고 한다. 그럼 삶에의 맹목적 의지는 어디서 연유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계속 물어야 하고 그 원인이 되는 걸 계속 없애고 끝까지 없애면 안 태어날 수 있다. 그럼 안 죽는다. 안 태어난 자들은 죽지 않는다. 이 정도면 황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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