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와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방사광가속기와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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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방사광가속기가 충북 청주 오창에 들어선다.

이 문장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원대한 희망과 포부는 속뜻으로 있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자치단체들과 한정된 엘리트 관료, 더불어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벅찬 희열과 감동이 훨씬 더 크다.

2020년 5월 8일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으로 선정된 방사광가속기 부지는 1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생산 유발효과 및 부가가치가 강조되며 축하의 풍선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게다가 고용 창출의 기대 또한 13만 7천명에 이를 것으로 홍보되면서 지역을 들뜨게 하고 있다.

실로 충청북도와 청주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사건임은 지역주민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따라서 큰 기대와 더불어 `축하할 일'이거나 `(이곳으로 결정된 것이) 참 다행이다'정도의 노변담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지면서, 지역에 어떤 이익이 있으며, 지역민들은 (방사광가속기에서)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로 비약되면 하나같이 말수가 줄어든다.

지극히 평범한 충북 도민이자 청주시민 몇몇이 자리한 대화에서는, 2028까지 진행되는 토건을 통해 자금의 지역내 유입이 커지고, 공사 인력이 늘어나면서 건설경기의 활황이 예상된다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방사광가속기 같은 정밀하고 특수한 과학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의 건설기술력과 대기업 중심의 토건업계 협력시스템을 감안하면 답변이 몹시 곤궁하다. 방사광가속기가 본격 운영되면 관련 분야 종사자가 필수적이고 이를 지역 인적자원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일반 광원에 비해 밝기와 세기가 수백 만 배에서 수억 배 정도까지 강한 첨단의 기술력을 소화할 수 있는 지역 인적자원을 키워 왔는가? 라는 반문에는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한다.

방사광가속기 유치의 청사진을 통해 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린다.

편모슬하의 궁핍한 어린 맹자가 공동묘지 인근에 살면서 무덤 파는 인부들의 흉내만 내더라. `안 되겠다' 생각한 맹자 어머니가 시장 근처로 거처를 옮기니, 이번에는 장사꾼의 흥정을 따라 하더라. 자식 교육을 망치지 않을까 염려한 맹자 어머니가 글방 옆으로 이사를 했더니 글을 읽고 조상을 섬기는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게 됐다는 일화는 좋은 학군을 쫓아다니는 현대판 모정이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우리는 강남8학군이라는 차별과 단절의 `스카이 캐슬'을 만들었으며, 출세 지향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불평등의 표상으로 오독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 유치의 출사표와도 같은 축하 메시지 가운데 김병우 충북도 교육감의 말에서 일말의 희망을 읽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충북이 국가 발전을 선도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끄는 중심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언급은 공치사에 가깝다. 다만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충북교육청은 기초과학과 첨단과학, 관련 산업 분야의 고용 창출 등 변화될 지역 산업 지형에 대비한 과학고, 영재교육, 특성화고의 교육과정 개편 등의 사항을 면밀히 검토, 수립해 미래사회를 선도할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의지는 가상하다.

방사광가속기는 직진만을 고집하는 전자의 특성에 전자석을 이용해 자기장의 변화를 주면서 방향을 틀어지게 하는 작용을 거쳐 속도에 사용되던 에너지를 빛으로 전환하는 원리를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 원리는 결국 변화와 포용이라는 인문학적 해석과 다름이 아니다.

맹모삼천지교를 통해 어린 맹자는 무덤 옆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람과 인생의 본질을, 시장 옆에서는 물질과 사회가 뒤엉킨 세상을, 글방 옆에서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위한 학문의 천착을 생각하는 단계적이고 복합적인 성장과정을 거친 것 아닌가. 방사광가속기가 단순히 백년의 먹거리로 은유되는 것보다, 기왕 지역에 입지하게 된 첨단 과학기술을 지역의 인재가 다룰 수 있는 주인공을 키우는 일은 맹모삼천지교와 닮았다.

방사광가속기의 광대하고 세심한 눈(현미경)은 먼저 사람을 향할 때 더욱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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