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똥꼬
입과 똥꼬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05.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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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우리는 거미줄 같은 이해관계 속에서 산다. 작년 취업포털 인터루트에서 직장인 120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91%는 퇴사 고민이 있었음을 털어놨다. 가장 많은 퇴사 고민 지점은 연봉, 상사와 조직 분위기, 업무, 복리후생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퇴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연봉으로 시작한 퇴사 고민은 연봉이 아닌 상사와의 관계와 대표의 폭언 등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고 한다. 응답자의 25%가 퇴사를 감행했고 그중에 21%가 `돈'이 아닌 `관계'였다. 몇 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도 그렇다. 국회의원 선거는 나라의 국정을 얼마나 잘할 것인가의 판단이 아닌 우리 지역구에 얼마나 많은 이득을 줄 것인지를 유권자는 먼저 생각한다. 하여 다양한 공약보다는 유권자의 시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이 곳곳에 보인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책이 떠오른다. 숲에 살면서도 숲속 생명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먹어 치우고 싶어 안달하는 괴물 이야기다.

키는 집채만 하고 두 눈은 접시를 발딱 세워 놓은 것처럼 땡그랗고, 두 귀는 트럭 바퀴처럼 큼직하고, 코는 고구마 세 자루를 뭉쳐놓은 것처럼 불룩한 아주 못생긴 괴물이 있다. 아주 고약하고 심술궂지만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이 아주 아주 아주 작기 때문이다. 괴물이 먹는 것은 고작 개미, 파리, 잠자리 같은 곤충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우습지 않은가. 모습은 집채만 한 괴물이 먹는 게 곤충류라니.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곤충을 먹었을까 생각하니 한편으론 마음이 짠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유명한 병원이 들어선다. 무엇이든 고친다는 병원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갔다. 괴물도 이 기회에 입을 고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은 욕심에 ?욕심이라고 할 것까진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괴물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이 커져도 지금처럼 못되게 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냐고 했고, 괴물은 당연히 지금껏 그래왔듯이 착하게 살겠노라 이러쿵저러쿵 맹세한다. 드디어 괴물의 입은 자동차 트렁크만큼이나 커졌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라.

괴물은 나타나는 동물마다 먹어치웠다. 그날 밤, 괴물은 집토끼 열 마리, 산토끼 세 마리, 다람쥐 다섯 마리, 멧돼지 두 마리, 아기노루 한 마리를 먹어 치웠다. 엄청난 식사량이다. 그동안 얼마나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쯤 되면 생존을 위한 사냥이 아니라 탐욕과 욕망이며 한풀이 사냥이다. 괴물은 먹고 싶은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즐겁게 살았을까. 물론 아니다. 괴물은 그날 밤, 그러니까 수술받고 집으로 돌아와 마구 잡아 먹어치운 날 죽었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소리를 질러대며 배가 아프다가 죽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입은 커졌지만 똥꼬는 옛날 그대로였던 것이다.(얼마나 지혜로운 의사인지!)

선거가 끝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을 꼽으라면 `이제 그 인간 TV에서 안 봐서 좋다'라는 말이다. 안타까운 낙선 소식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당선 소식도 있었다. 모든 걸 차치하고서 이제 당선인 중에는 입을 고치고 본색을 드러내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국민이 임명해 준 권리를 당연히 누리며 갑질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국가는 회사와 달리 퇴사가 쉽지 않고 생각만으로도 복잡하다. 부디 본인 예전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때 살던 일상이 4년 뒤에 돌아갈 자리임을 명심하며 이야기 속 괴물처럼 미련한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과 똥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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