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있는 삶
별 볼 일 있는 삶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05.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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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철수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미소가 번졌다. 보고 싶던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다. 벌써 서른 살이 넘은 제자들, 천체관측반 `카펠라'아이들이다.
2004년 시골 학교에 발령 났을 때, 축하 인사보다 걱정하는 소리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이 일은 지구과학 교사인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매일의 날씨, 생생한 사계절, 하늘과 자연, 산과 돌, 모두가 지구과학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무엇보다 까만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은 내게 새로운 우주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 하늘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 함께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선생님, 어젯밤에 별이 이렇게 있었어요.”
“카시오페이아가 그렇게 보였다면 새벽 두 시 정도인 건데, 그렇게 늦은 시간에 뭐 했니?”
어제 별을 보지 않은 아이는 아마 오늘 밤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친구가 말한 카시오페이아를 찾아보고 또 다른 별자리를 발견할 것이다.
천체관측반을 하고 싶다고 아이들이 찾아왔다. 사실 아이들이 먼저 왔는지, 내가 먼저 하자고 했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데, 우리는 천문관측 교내 행사를 해보기로 했다. 1부는 교실에서 오늘 관측할 별자리와 천체들에 대해 알려주고 2부는 밖으로 나가서 별자리를 설명해주고, 달과 별을 망원경으로 관측해보는 것이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음에도 세 가지 별자리 신화가 각기 다른 형식의 연극으로 소개되었고, 아이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의 열정과 기발함 덕분에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고, 우리는 한껏 고무되어 정식 동아리를 만들기로 하였다.
베가, 스피카, 시리우스, 프로키온, 폴룩스, 알데바란, 리겔, 베텔게우스, 카펠라…. 1등성들이다. 시리우스는 가장 밝은 별이다. 이름만으로도 눈이 시리도록 밝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너무 흔한 이름이다. 우리는 마차부자리 제일 밝은 별인 `카펠라'를 동아리명으로 정하였다. 다리가 불편해서 마차를 발명하였고, 용감하고 정의로웠다는 왕에 관한 마차부자리 신화의 의미도 담았다.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가정과 사회의 건실한 일원으로 성장한 제자의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흐뭇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은 무대 디자이너, 컴퓨터 프로그래머, 자동차 회사원, 노무사,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꿈이 천문학자가 아니었지만, 모두 별을 좋아했던 아이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여름휴가를 함께한다며, 지금도 여전히 끈끈하게 지내고 있다고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은 성실한 학생들처럼 자랑스럽게 내게 말했다. 카펠라라는 이름으로 학창 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고, 가장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다고 하였다. 함께 하여 더 많은 별을 보았고, 별 그 이상의 의미를 만들었다. 진심으로 기쁘고 내 현명한 제자들이 자랑스러웠다.
철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지구과학Ⅰ, 지구과학Ⅱ를 공부하고 기계공학과에 갔다.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후회는 없다며 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공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면서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생활기록부 관리를 하는 학생이라면 컴퓨터 프로그래머, 물리치료사가 되길 희망하면서 천체관측 동아리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2년 전 천체관측 동아리 회원은 한 명이었다. 그다음 해에는 결국 사라졌다. 당분간 천체관측반 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좀 아쉽게도, 나도 아이들에게 함께 별을 보자고 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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