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유리벽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5.05 2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5월의 바람은 어린아이다. 함께 놀아주다 보면 꼭 어른들이 먼저 지쳐 쓰러진다.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질긴 끈기를 보여주는 체력이 조그만 몸에서 어찌 그리 끝없이 나오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처럼 바람은 며칠째 온종일 지칠 줄을 모르고 분다.

유리창 너머의 꽃에서 바람을 본다. 우체국 화단에 심겨진 진달래가 몸으로 바람을 심하게 탄다. 가지가 흔들리더니 나무 전체가 뒤놀고 있다. 잠시 멈춰 서는가 싶다가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또 몸부림을 해댄다. 저러다 뿌리째 뽑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며칠을 거르지 않고 시달리는 꽃들을 지켜보았더니 내가 더 어지럽다. 토 나올 것 같다. 그래도 꽃들은 견딘다. 서로 기대듯 스치며 버텨낸다. 유리를 통해 들어온 꽃의 모습이 애처롭다.

투명한 유리가 새들에게는 수난이라고 한다. 요즘 통유리로 된 건물과 고속도로의 투명방음벽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들에겐 보기 좋은 벽이 조류들에겐 죽음의 유리벽이 된다. 새의 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이 앞에 나무가 있다고 꼭대기로 날지 않고 가지 사이로 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투명한 유리는 그저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매년 천만 마리가 넘게 죽는 국도변은 새들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우체국에도 열어놓은 문으로 제비가 들어온 적이 있다. 아무리 내쫓으려 해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높이 날아다녔다. 문이 있는 쪽으로 나가게 하려고 빗자루를 휘두른 게 불안했는지 더 빠른 속력으로 날다가 창에 몇 번이나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쿵”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모두가 놀랐다. 창에는 핏자국이 묻은 채 아래로 뚝 떨어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나 했는데 죽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인식한다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왜 못보고 자꾸만 창문에 부딪히나 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새는 눈이 얼굴의 앞쪽이 아니라 양쪽 옆에 달렸기 때문이다. 앞보다 옆과 뒤를 더 잘 볼 수 있는 구조다. 포식자를 빨리 알아차리려고 넓은 시각을 갖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구나 비행을 위해 뼛속이 대부분 비어 있어 창에 부닥치면 머리에 치명상을 입는다. 골절이 일어나기도 하고 심하면 죽게 된다.

어디 유리벽에 다치고 상처받는 게 새뿐이랴. 유리벽은 사람들에게도 있다. 직장 내의 보이지 않지만 넘을 수 없고 깨지지 않는 차별의 벽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여성의 사회참여나 승진을 가로막는다. 서로 갈등도 마찬가지다. 투명하기 때문에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있는 줄 모르는 것처럼 직장 내의 숨어 있는 장벽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 벽을 넘어서기란 어렵다. 앞으로 나가면 유리가 깨져 부서진 파편에 다칠 수 있다. 높이 뛰어넘기엔 장애물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벽은 세상 숲에서 수없이 쓰러지고 좌절하는 경험을 쥐여준다.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만을 더 강하게 만든다.

33년간 예능계에 몸담은 박미선은 긴 세월동안 활동한 개그우먼이다. 변화무쌍한 연예계에서 그녀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젖은 나뭇잎처럼 버텼다고 했다. 바닥에 바짝 붙어서 대신 고개는 하늘을 쳐다보고 천천히 버티는 것이라고.

때때로 유리벽 앞에서 숨이 막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젖은 나뭇잎이었다. 외면당하는 진실에 아파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혀 온 나. 나만 결백하면 되지 않을까. 설령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이제 괜찮다.

`2인자면 어때. 최선을 다해 부끄럼 없이 살면 되는 거야.'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밑바닥에 꾸욱 눌어붙어 견뎌낼 것이다. 늘 하늘을 잊지 않을 터이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완주해 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