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우리들의 '일상(日常)'
5월, 우리들의 '일상(日常)'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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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비록 부분적이지만, 마침내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했다. 굳게 닫혔던 교문이 차례로 열릴 것이고, 텅텅 비어있던 공간은 조금씩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동안 금지되어 왔고 참아왔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질 것이고, 목로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해후의 건배를 위해 약속을 서두를 것이다.

우리는 오랜 동안 매번 반복되는 보통의 일을 뜻하는 `일상(日常)'에 각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 쫓기며 사람과 일에 치여 피곤한 나날이거나, 의미없이 심드렁하게 보내는 시간쯤으로 아무렇지 않게 여겨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인간세상을 위협하면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사회적)거리두기는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생활방역체계는 생활 속에서 거리를 두는 단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시행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황금연휴가 포함된 5일 어린이날까지 계속된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쳐 감염병에 대한 대응이 조정된 것이다.

푸르른 5월에 그나마 열린 `일상'의 소중함은 <신록예찬>을 찾아 읽는 희열을 만든다.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 하지 아니한가. (중략)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사람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앉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후략)”<이양하. 신록예찬>

아직은 어설프고 조심스럽지만 오늘부터 우리는 조금씩 `일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 신입생이 되었어도 사용하지 못했던 새 책과 새 책가방, 새 교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화면으로만 만났던 선생님과 동무들을 곧 만날 수 있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격리되고 차단되었던 집 안에서의 머무름에서 벗어나 집 밖의 쾌활하고 막힘없는 세상과의 만남에 설렘을 감출 수 없다.

우리는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코로나19 재난을 통해 (부분적이나마)다시 만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상'이 본래의 `일상'으로 얼마나 되돌아 갈 수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람이 격리되고 차단되는 동안 하늘이 더 가깝게 다가오고, 물이 맑아져 도시 하천에 물고기가 돌아오면서 지구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하늘과 땅을 뒤덮었던 소음과 진동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두려움과 부족함을 떨쳐 버리고 이타와 연대, 상호부조를 통해 코로나19에서 새로운 희망과 사랑을 만들고 있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이 자본의 탐욕과 차별, 그리고 냉정하고 치열한 경쟁과 분노, 그리고 혐오와 배제로 오염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 `일상'은 위태롭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건강과 안전이 사람다운 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쳤다. 설핏 되돌아가는 `일상'에서 건강과 안전이 자본의 탐욕을 얼마나 물리치는 능력을 발휘할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달려있다.

이양하의 <청춘예찬>은 1947년 발표된 글이다. 극심한 혼란의 해방공간에서도 눈을 들어 삼라만상을 성찰하는 달관과 관조는, 지금 코로나19의 마지막 고비를 넘는 슬기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생명과 공존하는 본래의 `일상'을 되찾는 일. 약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5월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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