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
다시, 5월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4.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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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작가가 글을 쓸 때는 그 소재가 자신의 삶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현실인식 태도는 독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더구나 소설을 쓰는 작가는 그가 전문적인 직업가이든 아마추어이든 자기 생활과 삶을 더 문제 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문제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에서 진실을 추구하게 되고, 그 진실을 추구하려는 정신이 소설을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작가정신이라 부를 수도 있다.

미국의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역사가 구속복이 되어서 압도하고 제한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잊혀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작가란 역사를 비판하고, 시험하고, 도전하고, 또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의 과거사는 상처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 운동은 지금까지도 짙은 상흔으로 남아있다.

역사는 상상력의 보고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인물의 삶과 갈등과 숨겨진 진실을 만나곤 한다. 역사적 인물에 매혹 당할 수도 있고, 역사적 진실을 새롭게 파헤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때도 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몇 년 전에 읽었음에도 아직까지도 그 충격이 지워지질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그렇게 극심했을 줄은 미처 몰랐다. 5·18을 겪은 고문 생존자는 그 경험이 방사선 피폭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피폭이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능 물질이 수십 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키듯, 그 기억은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괴로운 삶이라고 했다.

아마도 작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왜곡과 실상을 사람들에게 잘 알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시간을 사건이 일어난 10일간에 맞추고, 객관적인 사실 전달과 33년간 지속해온 유족과 생존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소설에 담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증인으로 시대의 법정에서 말하고 있는 증언서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책은, 어떤 누군가가 탁자를 가로질러 돌진해서는 독자를 한 대 후려갈기는 것과 같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마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후에 느끼는 기분을 대변한 듯하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 땅 위에서 그렇게 잔인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작가가 소설 말미에 독자에게 주문한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 동호의 눈 덮인 무덤 앞에서 작가가 나지막이 되뇐 말이기도 하다.

다시 5월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아직도, 여전히, 끊임없이, 되 태어나 살해된다는 그들의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공감을 하며 알기는 알까. 춥고 어두운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5·18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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